'재정파탄' 기재부가 A등급? 당황스러운 이유
[송두한 기자]
▲ 기자간담회 하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
ⓒ 연합뉴스 |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재정건전성과 물가관리 등의 성과를 기반으로 2023년 업무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건전재정의 기치 아래 -56.4조 원의 역대급 세수펑크와 1.4%의 성장률 충격을 딛고 일궈낸 성과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기재부는 물가안정은커녕 공공발 물가대란 사태를 촉발해 민생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물가·고금리 충격을 가한 주체다. 또한 한은의 마이너스 통장을 주먹구구식으로 전용하거나 외평기금으로 급전을 돌려막는, 쌀집 수준과 흡사한 재정운영 역량을 보인 바 있다. 이러한 기재부가 작년 정부업무평가에서 최고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다는 춘향전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이유다.
그렇다면, 기재부가 재정파탄을 내고도 최고로 평가받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처럼 황당한 일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이 모든 게 경제권력이 구축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관료에 대한 국정 의존도가 높아져 무능한 관치가 더 기승을 부리게 된다.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다 보니, 정책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민생경제가 직면한 위기에 공감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최악의 재정파탄 사태는 경제라인 경질로 책임 물어야
2020년 B등급으로 강등된 기재부가 3년 만에 최고등급인 A등급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당황스럽게도 '재정건전화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56.4조 원'이라는 최악의 세수펑크 참사만 보면 A등급은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대체 어찌된 일일까. 경제관료의 정책 실패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세수추계 오류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기재부의 정책 실패는 코로나 사태에 비견할 만한 대참사에 가까운데, 사실 관치의 검증된 무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유효했다. 이전 정부에서 홍남기 '또ECD' 부총리(정부에 유리한 국제지표만 선택적으로 사용해 붙여진 별명)가 쏘아 올린 의도적인 과소추계 의혹도 민생경제에 충격을 가한 대참사로 기록될 만하다. 당시 팬데믹 위기의 한복판에서 코로나 손실보상 문제가 발발하자, 초과세수가 발생해도 그 규모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기껏해야 '20조 원+a' 정도에 불과하다며 세수 축소에 여념이 없었다. 그 결과, 2021년 +60.4조 원, 2022년 +57.3조 원 등으로 초과세수가 2년 연속 50조 원을 넘어서는 최악의 세수오류 참사를 초래했다.
문제는 초과세수 사고로 인해 필요한 곳에 필요한 구제 자금이 적기에 투입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위기의 원천인 코로나발 매출 충격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충격의 여진이 지금까지도 내수업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당시에도 초과세수 사태로 인해 기재부 경제라인을 통으로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었지만, 기재부는 오히려 정부업무평가에서 B등급을 받은 바 있다.
물론, 경질만으로도 부족한 대형 사고를 치고도 단 한 명의 경제관료도 처벌받지 않았다. 관치가 아무리 무능하다 해도 이 정도의 초과세수 오류도 걸러내지 못할 정도의 삼류는 아니다. 다분히, 관치에 깊게 뿌리 내린 곳간지기 이념이 세수추계에 직간접적으로 스며든 측면이 있다.
그런데 윤 정부에서 더 심각한 재정파탄 사태가 벌어졌다. 즉, 정책 수단에 불과한 건전재정이 국정 목표로 변질되면서 '-56.4조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세수펑크를 냈다. '법인세 뺀 긴축재정'으로 민생경제는 긴축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물가·고금리 충격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부가 건전재정을 강조하면 할수록 재정은 더 불건전해졌고, 민생경제는 더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든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는 재정 여력이 소진되어 확장적 민생재정에 대한 기대마저 접어야 할 처지다.
재정파탄의 주범은 건전재정 이념에 스며든 친자본·친기업 편향이다. 말이 건전재정이지 엄밀히 따지면, 부자감세로 뒷문 열어놓고 긴축 민생재정으로 앞문 잠근 제로섬 게임(zero-sum)에 가깝다. 즉, 건전재정의 본질이 '부자감세·서민증세'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작년 세수펑크 중에서 법인세 감소분이 44%를 차지할 정도로 재정건전성 악화에 미친 영향이 크다. 법인세는 2022년 103.6조 원에서 2023년 80.4조원으로 무려 23.2조원이나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국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6.2%에서 23.4%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유리 지갑인 근로소득세는 2022년 57.4조원에서 2023년 59.1조 원으로 오히려 증가했으며, 국세 차지 비중도 14.5%에서 17.2%로 대폭 증가했다. 그 결과, 부자감세 공백을 서민증세로 메우기는커녕 민생곳간도 털리고 나라 곳간도 털리는 무능한 정부가 되어 버렸다.
▲ 세수추계 오차 추이와 주요 물가지수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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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가 정부업무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물가안정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근거로 내세우는 소비자물가 지표를 보면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2021년에 2.5% 정도였던 소비자물가는 2022년에 5.1%로 2배 이상 치솟았다가 2023년에는 3.6%까지 하락하며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 또한, 기재부가 물가안정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비교 지표들도 이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우리나라 물가는 일본의 3.1%에 비해 높은 수준이지만, 미국의 4.1%, 프랑스의 4.9% 등과 비교하면 양호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진짜 문제는 기재부가 '공공발' 민생물가 대란의 주범임을 입증하는 핵심 지표들이 업무평가나 국정홍보에서 통으로 빠졌다는 것이다. 정부의 물가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고물가 국면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단행해 물가대란을 부추기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공공 주도 물가상승으로 인해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고물가와 소득충격의 직격탄을 맞아야 했으며, 그 충격은 시차를 두고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내수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 과일 인플레 기여도, 13년 만에 최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에서 '과실'의 기여도는 0.4%포인트로, 2011년 1월(0.4%p) 이후로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1월 물가상승률(2.8%) 가운데 과일만으로 전체 인플레이션의 7분의 1을 끌어올렸다. 사진은 13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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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물가정책 실패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귀책 사유에 해당한다. 무리한 공공요금 인상으로 물가대란 사태를 부추긴 것이 첫 번째 책임이고, 부실한 사후 대응으로 피해를 확산시킨 것이 두 번째 책임이다. 특히, 정부의 물가 대책이 반(反)서민 정책인 이유는 공공요금을 인상해 보편으로 충격을 가하고 선별로 일부 취약계층만 구제하는 역주행 정책이 무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치에 깊게 뿌리내린 시장주의 이념의 눈으로 보면, 일견 민생곳간을 털어 공공적자를 메우면 재정건전성이 좋아질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반서민적 물가정책으로 인해 중산층이 얇아지면, 결국 국민도 나라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작년에 정부가 내민 재정파탄 성적표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재부의 공적 평가는 유례없는 경제위기마저 전례 없는 자화자찬으로 포장할 수 있는 관치의 힘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기재부가 받은 최고등급의 업무평가는 우리 경제가 관치의 혁신 없이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1.4%의 저성장 충격과 -56.4조원의 재정파탄 사태가 고물가·고금리 충격과 결합하며 부채발 민생위기로 진화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책임의 주체인 윤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를 즉각 교체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송두한은 국민대 특임교수이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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