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펀드 연합 "삼성물산 배당확대"…표대결 아닌 '장기여론전'
"여론환기, 장기적인 오너압박 효과 목적"
울프팩전략 등 새 트렌드…목소리 더 커진다
여러 행동주의 펀드가 힘을 합쳐 삼성물산의 배당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면서도 이 같은 주주환원 요구가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삼성물산은 내달 15일 정기 주주총회 소집을 공지하고,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등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자사주 소각'과 '현금배당' 안건을 의안으로 상정했다고 밝혔다. 주주제안엔 시티오브런던과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미국계), 안다자산운용(한국계) 등 5곳이 행동주의 펀드 연합으로 참여했다. 시티오브런던 등은 해외에서도 일관성 있게 주주환원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행동주의 펀드로 평가받는다.
삼성물산, 공시로 "연합 제안에 반대해 달라" 호소
펀드 연합이 주주총회에서 요구하는 주요 안건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보통주 1주당 4500원(우선주 4450원) 배당 등이다. 앞서 나온 삼성물산 이사회안과 비교해 배당금이 75% 이상 많은 수준이다. 이사회안은 보통주 1주당 2550원(우선주 2600원) 배당이다. 만약 주주제안대로 배당금이 오르면 총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와 올해 잉여현금흐름(삼성바이오로직스 제외)의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다.
이에 삼성물산은 이례적으로 공시를 통해 "주주제안에 반대하는 의결권 위임을 권유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주주제안대로 현금이 유출되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은 회사가 주주환원 가치에 동의하며, 관련 정책을 시행 중이란 점도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보통주 780만7563주와 우선주 15만9835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우선주는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투자자의 요구를 일부 반영해 이사회안으로 자사주 소각 내용을 발표한 상태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도 고려할 수는 있겠지만, 그대로 단기간에 배당금을 올리는 것은 어렵다"며 "기업으로선 배당금을 너무 올릴 경우 투자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주주환원과 투자는 같이 가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해야 미래 이익이 많아지고, 이익이 늘어야 주주환원도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어느 정도 비율로 할 것인지 균형을 잡는 일은 회사가 정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실제 주주총회에서 이른바 '표 대결'에서 주주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펀드 연합의 지분 합계도 1.46%에 불과하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도 표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뻔히 알 것"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각종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있었지만 표 대결을 이긴 사례는 거의 없다. 대신 행동주의 펀드들은 (경영권 분쟁 속에 주가가 크게 오르자)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본 뒤 웃으며 떠나갔다"고 설명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소유·지배 구조를 보면 계열사 출자 등을 통해 총수의 대기업 내부 지분율이 60%를 넘어서고 있다"며 펀드 연합이 이길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한 연구원도 "이번 안건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정도일 뿐, 주주총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단기적으로 특별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펀드 연합, 표대결 승산 없지만… "여론전, 지금이 시작"
다만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요구는 갈수록 강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각 기업이 내달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있어서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 여러 곳이 연대해 한 기업을 공격하는 울프팩(wolfpack·늑대 무리) 전략도 전격적으로 활용되는 모양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울프팩 전략이 본격화될 수 있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등 강화된 주주환원 확대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연구원은 "울프팩 전략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전략이었다. 펀드 연합은 최근의 트렌드"라며 "여론을 형성하는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 총수가 조금이라도 변화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결국 삼성물산을 첫 시작으로 다른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목소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펀드 연합의 요구가 일견 타당하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총주주환원율과 배당 성향이 국제적으로 떨어져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국제적인 추세를 볼 때, 그간 한국은 배당 성향이 워낙 낮았다"며 "이번 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배당금 인상안 관련 요구는 사측의 두 배 수준이다. 지금까지 삼성물산의 배당 수익률은 1.7~2% 남짓이므로, 두 배로 해도 4%에 불과하다. 회사로선 그러한 요구를 감당할 충분한 여력이 있고, 이는 장기적인 방향성에도 맞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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