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유권불구속 무권구속
2심 유죄에도 법정구속 면해
법 형평성 의문 커질 수밖에
2년 전쯤 한 지방법원 앞 민영주차장 안내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오늘 법정구속될 것 같으면 차 열쇠와 차 인수할 분 전화번호를 꼭 남겨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차장 주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차 문제로 구치소에 면회를 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웬만한 외제차는 금방 찾아가지만 남겨진 차 중엔 담보대출이 잡힌 것도 많다고 한다.
법정구속은 법원이 판결에서 실형을 선고할 때 직권으로 영장을 발부해 구속하는 것을 말한다. 불구속 재판을 받다가 귀가하지 못하고 구치소에 수감된다. 재판을 방청하다 보면 구속을 예상 못해 당황하는 피고인을 심심찮게 본다.
법정구속은 법률인 형사소송법에는 별도 규정이 없고 대법원 ‘인신구속 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에 나와 있다. 기존 예규는 ‘실형을 선고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구속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1년 1월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법정구속으로 예규를 변경했다.
대법원의 예규 변경은 형사소송법에 더 충실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①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②증거인멸 염려 ③도망 염려, 셋 중 해당 사유가 있을 경우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구속 사유 심사에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돼 있다.
예규 개정 이후 법원의 태도는 법정구속 판단 시 증거인멸과 도망 염려를 더 신중히 따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최근 입시비리 혐의로 2심까지 실형 2년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을 피한 것이다. 1, 2심 모두 실형을 받고도 법정구속되지 않은 것은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게 사실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법정구속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재상고 포기로 실형이 확정됐지만 설 특별사면을 받아 다시 복역하지 않고 남은 형을 면제받았다.
법 집행은 공정하게 처리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게 처리되는 것으로 비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방어권 보장을 위한 무죄추정 원칙, 불구속 재판 원칙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유력 인사들이 잇따라 법정구속을 피하는 것이 국민에게 공정하게 비칠지 의문이다.
증거인멸 염려, 도주 우려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영장 재판의 특성상 판례가 축적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로또 영장’ 지적도 받는다. 사회적 명망이 있는 유력 인사들은 도주 우려가 적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보니 과거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빗대 ‘유권불구속, 무권구속’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예전에는 수사 단계에서의 영장 심사에서 이런 지적이 나왔다면 이젠 법정구속 단계로 논란이 확장되는 모습이다.
다른 사건들은 어떨까. ‘성희롱 가해’ 의혹이 허위라고 주장한 40대 남성(명예훼손 혐의), 동료를 모욕·폭행한 간호사, 마약을 투약·소지한 작곡가 등은 최근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들이 조 전 장관 등 유력 인사들과 비교해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염려가 유독 더 큰 것으로 해석할 만한 사정은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법부 신뢰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유력 인사들에게 엄정한 태도를 보일 때 스스로 세울 수 있다. 유력 인사들이라고 해서 법원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이 법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법정구속 관련 형평성 문제’ 지적에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필요하다면 대법원 차원에서 예규 재개정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도 구속 사유 조항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 등을 검토해보면 어떨까. 현행법의 범죄의 중대성 등 조항을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포함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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