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되살려야 할 이승만과 제헌국회의 협력
우남(雩南)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공산 세력으로부터 지켜낸 거인(巨人)이다. 강대국 미국은 오판을 거듭했지만 우남은 오차 없는 국제정세 판단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덕영 감독의 다큐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많은 분이 “저평가된 우남의 실체를 알게 됐다”고 했는데 실제 그랬다. 우남의 전모를 보다 균형 있게 파악하려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제헌국회와의 갈등과 협력을 편견 없이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48년 미군정이 끝나가면서 우남에게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5·10 총선, 헌법 제정, 대통령 선출, 내각 구성을 통해 정부를 출범시키고 미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을 넘겨받아 8월15일 신생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해야 했다. 9월21일 시작되는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을 받는 것도 중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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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오판으로 초래된 북의 남침
우남, 초인적 노력으로 나라 구해
제헌국회, 당략 초월 ‘민주’ 지켜
한반도 위기 대비 견제·협력 필요
」
그래서 5월31일 구성된 제헌국회에 “1분이라도 빨리 우리 헌법을 통과시키자” “비율빈(필리핀)은 이틀 만에 만들었다”고 채근했다. 일본은 착수 9년 만인 1889년에 메이지 헌법을 제정했는데 한국은 한 달여 만에 해치웠다. 우남은 나라를 잃은 뒤 외교를 통한 독립을 성취하는 데 한평생 매달렸지만 좌절했다. 그래서 새 정부 수립의 성공 가능성을 100% 낙관하지 못했다. 남로당의 준동도 불안감을 키웠다. 그가 실권을 가진 초당적 지도자가 되려 한 배경이다.
반면에 최초의 국가기관인 제헌국회는 민주적 절차를 중시했다. 우남의 거부로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제로 급선회했지만 헌법에서 내각제적 요소를 최대한 살렸다. 대통령의 결정은 국무회의 과반수 의결을 거쳐야 집행될 수 있게 했다. 국회는 총리를 인준하고, 총리와 장관을 부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통령의 설명을 요구했고, 정부의 책임성(accountability)을 제도화했다.
제헌국회는 재석 196명 중 180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우남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확고한 국부(國父)의 위상이 확인됐다. 문제는 초대 국무총리 인선이었다. 우남은 김성수·신익희·조소앙 등 국회가 원하는 지도자 대신 북에서 내려온 목사 이윤영 의원을 선택했다. 국회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부결시켰다.
우남이 담화를 통해 “인준 부결은 파벌주의 때문이며 참된 민의가 아니다”고 하자 “이런 어법은 천황제와 비슷하다”(노일환 의원)는 반발이 나왔다. 파국 일보 직전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우남은 국회에 나와 “국회가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를 인준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제국가가 아니라 민주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환영한다”고 물러섰다.(『오늘이 온다』 권기돈)
임기 2년의 제헌의원 200명은 “1인1당”의 자유를 누렸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당당하게 발언했다. 대부분 짐칸에 덮개를 씌운 트럭이나 전차를 타고 출퇴근했지만 주말에도 국회에 나와 치열하게 토론했다.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의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1950년 1월19일 미국 하원이 6000만 달러 규모의 한국경제원조안을 부결시켰다. 국회는 원조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조헌영 의원은 찬성하면서도 “왜 부결시켰는지는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고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파를 초월해 존경받았던 ‘토론 종결자’ 조 의원은 고려대 교수였던 조지훈 시인의 부친이고,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조부다.
일주일 뒤인 1월 26일 민국당 서상일 의원 외 78인은 “대통령제로는 민주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내각제 개헌안을 발의했다. 야당 출신 신익희 국회의장은 개헌에 찬성하면서도 우남을 “나라의 지보(至寶)이고 국부”라며 “그분이 종신대통령이 되기 바란다”고 했다. 국정 운영의 일방통행은 거부하지만 우남이 존경받는 인물임은 인정했다.
우남은 1949년 상반기 미군 철수가 기정사실화되자 북한의 남침을 우려해 군사적 지원을 요구했다. 미국은 거꾸로 북침을 우려해 외면했다. 2차 세계대전을 막 끝낸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남북 충돌로 3차대전이 터지기를 원하지 않았고, 소련도 같은 입장일 것으로 오판했다. 우남의 판단이 맞았다. 피란길에 허정을 만난 우남은 “미국놈에게 속았다”고 했다.(『허정 회고록』) 하지만 초인적 노력으로 미국의 지원을 끌어냈고, 반공포로 2만5000명을 석방하는 광인(狂人)전략까지 동원해 소원하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거머쥐었다.
제헌국회는 1949년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켜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만들었고, 6·25전쟁 중의 민심이반을 막았다. 우남과 제헌국회가 합력했기에 가능했다. 한반도 정세는 6·25 전과 흡사하다. 중국·러시아·북한은 밀착 중이고, 트럼프는 동맹을 헌신짝으로 여기고 있다. 우남처럼 국제정세를 꿰뚫고 강대국에 맞서는 용기 있는 지도자, 당리당략을 초월해 견제와 협력에 나선 제헌의원들의 2인3각 애국심을 되살려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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