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당했지만 두번은 안된다"...'방재도시' 거듭난 이곳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 시민 3분의 2가 3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각종 물품이 여기 보관돼 있습니다. 전기가 끊길 것을 대비해 창고 안 온도 조절은 풍력 발전을 이용합니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일본 미야기(宮城)현 히가시마쓰시마시의 '방재거점비축기지', 1500㎡ 넓이의 창고 안에 물과 비상식량, 의류와 모포 등이 창고형 쇼핑몰처럼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있었다. 유통기한 10년짜리 페트병 음료를 비롯해 건조 식량과 추위를 막아주는 블루시트, 마스크와 간이침대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오쓰카 미쓰마사(大塚光政) 관리사무소 대표는 "재해가 생기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물과 화장실이다. 비상시에 편리하게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간이 화장실도 4800개 비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가시마쓰시마는 미야기현 해안가에 있는 인구 3만 8349명의 작은 도시다.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4만 3000여명이었지만 그 사이 인구가 5000명 줄었다. 당시 높이 10m의 쓰나미가 해안가를 덮치면서 1100명이 사망하고 시가지의 65%가 물에 잠겼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중에서도 최대 면적의 피해를 입었다.
그로부터 13년, 히가시마쓰시마는 '방재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하에 국가로부터 받은 부흥 예산과 시 예산의 상당액을 방재 설비 확충에 쏟아부었다. 2014년 세워진 방재거점비축기지는 그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일본의 거의 모든 지자체가 재해 대비 물품을 비축해 놓고 있지만, 히가시마쓰시마처럼 거대 창고를 마련해 철저히 관리하는 사례는 드물다. 올해 첫날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 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히가시마쓰시마의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방문하는 타 지역 공무원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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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파수꾼, 방재 카메라
히가시마쓰시마의 방재 시스템 구축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해 발생 후엔 정전이나 교통·통신 마비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크게 요약된다. 쓰나미 피해가 컸던 히가시마쓰시마는 재해 이후 해안가 침수 지역을 아예 주거 불가 지역으로 지정하고 모든 주민의 거처를 내륙 쪽 고지대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22㎞에 이르는 해안선 전체에는 4~8m 높이의 제방을 쌓았다. 동일본대지진 당시엔 3m 정도였던 제방의 높이를 어민들의 조업 활동 등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높인 것이다. 제방을 따라서는 높이 8m의 쓰나미 감시 카메라 8대가 세워졌다. 파도의 움직임을 24시간 지켜보는 이 카메라들은 지진 등으로 전력이 끊겨도 문제가 없도록 태양열을 동력으로 작동한다.
재해 당시에도 해안가에 몇 개의 보안 카메라가 있었지만, 지진과 동시에 전력이 끊기면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바야시 이사무(小林勇) 히가시마쓰시마시 방재과 행정전문원은 "당시 쓰나미 상황을 살펴보려 해안가에 접근했던 소방대원 8명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면서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해안가 전반의 쓰나미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상 시스템을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각 가정에 무전 연락기를 1대씩 배포해 정전에도 피난 경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방재과에서는 매일 하루 2번씩 시험 방송을 통해 연락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한다.
재해 후 정전 대비한 태양열 타운
재해 발생 후 대응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 확보다. 히가시마쓰시마시 중심부에 2016년 만들어진 '스마트 방재 에코타운'은 태양열로 전력을 생산하는 주택단지다. 약 2.8ha의 평지에 태양열 발전기와 주택 85동이 지어졌다. 현재 247명이 거주 중이다.
이 지역이 선택된 가장 큰 이유는 인근에 병원이 밀집해있기 때문이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장기간 정전 사태로 병원에 전기가 끊기면서 응급 수술은 물론 신장 환자용 투석기 등을 작동하지 못해 환자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사례가 속출했다.
스마트 에코타운 인근에는 종합병원 1곳을 비롯해 개인 클리닉 등 4곳의 병원이 있다. 에코타운은 이 병원들과 연계해 비상시 전력을 공급하는 설비를 갖췄다. 이곳을 위탁 운영하는 히키마 요시미(引間世枝美) 대표는 "병원은 물론 재해 시 피난소로 활용될 인근 관공서나 학교 몇 곳에도 비상시 전기를 보내게 된다. 재난 속에서도 최소한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작동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토 지진에도 물품 지원
시 예산 5억 엔(약 45억원)을 들여 완공한 이곳은 낮 동안 태양열로 전력을 생산하고 밤엔 비축해 둔 전력을 활용한다. 태양열 발전(470kW), 축전지(480kWh)가 설치돼 있고, 태양열이 부족할 경우에 대비해 비상용 바이오 디젤 발전기(500kVA)도 갖췄다.
실제 지난 2017년 7월 태풍이 이 지역에 상륙했을 때 주변 지역은 모두 정전됐지만 이 지역은 비상 전력 시스템으로 자동 전환돼 평상시처럼 전기가 공급됐다. 완공 당시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는 주민 요네쿠라 유(米倉優·62)는 "어떤 재난이 일어나도 전기는 쓸 수 있다는 것, 치료받을 병원이 인근에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히가시마쓰시마의 사례는 일본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도쿄(東京)도가 하네다(羽田) 공항이 있는 오타(大田)구 부지에 방재 물품 비축기지를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태양열로 운영되는 에코 타운 건설을 계획 중인 도시도 늘고 있다. 히가시마쓰시마시 방재 창고의 비상 물품은 일본 전역에서 일어나는 재해에 활용된다. 1월 노토 지진 당시에도 히가시마쓰시마시는 일본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빠르게 물 4800병, 마스크 1만 5000매, 모포 1100장 등을 피해지로 보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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