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조국이라는 굴레

김원배 2024. 2. 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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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날 음식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인사청문회장에서 조국을 앉혀두고 사퇴하라며 압박을 하고 절정의 지점에서 검찰이 기소를 할 때에 저는 예수를 떠올렸다. (...) 골고다 언덕길을 조국과 그의 가족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예수의 길입니다.”

소름이 돋았다. 조 전 장관을 치켜세운 것이 아니라 조국 가족에 ‘예수의 길’을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열성 지지자에겐 조국 가족은 ‘없는 죄를 뒤집어쓴 순결한 피해자’가 돼야 한다. 이에 부응하듯 조 전 장관 일가는 사과는 하되, 구체적 혐의는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오죽했으면 조 전 장관의 항소심 재판부가 “범죄 사실을 인정 않는 사과와 유감 표명은 진지한 반성이 아니다”라고 밝히지 않았나. 그의 딸은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지만 유튜브 구독자가 38만 명이나 되는 인플루언서 대열에 올랐다. 조 전 장관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을 선언한 것도 바로 이런 팬덤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 반윤 이외에 정치 비전 안 보여
웅동학원 환원 약속도 안 지켜
내로남불 논란, 갈등 증폭될 것

그는 이미 법원이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법률적인 방법으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2년이 나오자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정치인 조국의 비전은 무엇인가.
“무도하고 무능한 윤석열 검찰 독재 조기 종식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12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 후)
그는 지난해 12월 오마이TV에 출연해 “200석이 있어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될 가능성은 희망적이지 않다. 민주개혁 진영이 내년 총선에서 200석 이상을 얻는 압승을 하면 개헌을 하고 그 부칙에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넣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024년 12월에 다음 대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 독재 조기 종식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있는 상황에서 그가 존재감을 보이려면 열성적인 반윤 세력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다. 지난 13일 창당 선언에서 강소정당을 내세우며 민주당보다 강하게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정치인 조국은 믿을 만한가. 그는 내로남불의 대명사였다. 조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 직전인 2019년 8월 “웅동학원 이사장인 어머니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비롯해, 저희 가족 모두는 웅동학원과 관련된 일체의 직함과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제게 밝혀 왔다. 향후 웅동학원은 국가나 공익재단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 어머니도 당시 학교 홈페이지에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조 전 장관 어머니는 22년 7월 연임해 이사장직을 지키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법인 이사장의 사진과 약력이 나와 있다.

법인 등기부엔 웅동학원 이사였던 부인 정씨가 22년 1월 27일 사립학교법 조항에 따라 퇴임했다고 나온다. 이날은 정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된 날이다. 내려놓은 게 아니라 학교법인 임원으로서의 결격 사유가 생겨 퇴임 처리됐다는 의미다. 피고인으로서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본인 선택이다. 하지만 대국민 약속을 안 지키며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1·2심 판결문을 보면 그는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직접 문서 위조를 했다.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 시절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한 것도 유죄로 인정됐다. 조 전 장관은 아직 사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할 수 있는데, 선거에 뛰어들어 표를 달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웅동학원을 보니 주변 정리도 안 됐고 그의 말을 신뢰하기도 어렵다. 선거 과정에서 그의 내로남불만 다시 부각될 수 있다.

2019년 가을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대한민국을 쪼개 놓은 '조국 사태'가 떠오른다. 이 문제로 친구끼리, 부모 자식, 부부간에도 다툼을 했다는 얘기를 여럿 들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는 사회 갈등의 아이콘일 뿐이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3일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갈등을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 사태 이상의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외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더이상 조국이란 이름이 상징하는 갈등의 굴레에 매여 있을 수 없다. 정치인 조국은 시대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글=김원배 논설위원 그림=심혜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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