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 [편집장 레터]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4. 2.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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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안전 안전’ 해도 현장에서는 늘 문제 생겨
그걸 작업복으로 방지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딘가”
대한제강이라는 철강 회사가 있습니다. 매출액이 1조원 넘어가는 회사지만 B2B 특성상 일반인에게는 그닥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죠. 대한제강은 최근 을지로에 ‘아커드 쇼룸’을 열었습니다. 신성장동력으로 작업복 사업을 펼치는 것은 아닙니다. 개발비 수억원을 들여 만든 아커드 작업복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에 실비만 받고 제공한다는 취지입니다. 용광로 앞에서 뜨거운 쇳물과 사투를 벌이며 일하는 직원 안전을 위해 아낌없이 비용을 투자해 만든 작업복이지만, 대한제강만이 아닌 안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기업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커드는 보통 비용 문제로 작업복에 잘 쓰지 않는 방염에 최적화된 아라미드 섬유를 사용했죠. 아라미드는 소방복에 주로 쓰이는 소재입니다. 작업복이지만 ‘대한제강’이라는 로고를 박아 넣지도 않았습니다. 1년여간의 개발 기간 동안 직원 의견을 수렴해 주머니를 더하거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치수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가격도 상당합니다. 상·하의 45만원대, 안전화 10만~13만원대. 대한제강은 이런 고가의 작업복과 안전화를 800명 직원에게 각각 3세트씩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근 새 근무복을 도입한 한 대기업 관계자가 “아커드도 검토했지만 원가가 너무 비싸 포기했다”고 토로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대한제강과 아커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커드 개발대행을 담당한 의류 ODM 전문업체 모노그램 기윤형 대표의 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오너 의지가 없으면 진행이 쉽지 않다. 오치훈 사장은 딱 두 가지를 강조했다. 조끼나 점퍼 가슴 부위를 쇳물이 튀어도 옷을 뚫고 들어가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그렇게만 하면 사고가 난다 해도 적어도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며. 아무리 ‘안전 안전’ 해도 현장에서는 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작업복으로 방지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냐고. 또 ‘스타일리시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퇴근 후 작업복을 입은 채 소주 한잔하러 가도 괜찮을, 그런 작업복을 직원들이 입고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며. 그렇게만 만들어주면 비용이 좀 들어도 괜찮겠다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업장까지 확대되면서 산업계가 난리입니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같은 중대재해가 일어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이죠. 기존에는 50인 이상 사업장만 대상이었지만 올해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사업장도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게 됐고, 당장 영세업체들은 “사업을 접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중대재해법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불현듯 대한제강이 떠올랐습니다. 중대재해법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직원 안전을 걱정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어서요.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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