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위성정당 꼼수…부끄러운 정치판 [신율의 정치 읽기]
병립형 고집하면 친문 탈당 우려에 고육지책
양당 위성정당 꼼수로 韓 정치 도약 요원해져
민주당이 ‘준위성정당’이라는 신조어를 들고나온 이유는, 이재명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제로의 회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준(準)’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배경이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국회에서 통과될 당시, 민주당은 정의당과 손잡고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강행 통과시켰다. 당시 민주당과 정의당 행동을 저지하려던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상사 때문에 아직도 재판받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아수라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민주당과 정의당은 준연동형 비례제를 강행 처리하는 명분으로, 이른바 ‘다양한 시각의 국회 공존’을 내세웠다. 다양한 소수 정당이 국회에 입성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주장과 시각을 표출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과 정의당이 내세운 준연동형 비례제 강행의 명분이었다.
그런데 21대 국회에서 어떤 소수 정당이 국회에 입성했나. 입성에 성공한 정당도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며 ‘다양성의 실체화’를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21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을 구성했던 대부분 소수 정당은 총선 직후 민주당에 흡수됐다. 그나마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만이 소수 정당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런데 시대전환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면서, 기본소득당만이 국회 내에서 유일한 소수 정당이 됐다.
준연동제 실시 명분이 증명되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또다시 준연동형제를 하겠다고 나섰다. 명분도 못 살리면서 왜 준연동형이라는 번잡스러운 제도를 굳이 다시금 실시해야 하는가. 민주당도 그런 고민을 한 것 같다. 당초 이재명 대표는 준연동형보다 병립형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재명 대표는 왜 병립형 선호에서 입장을 바꿨을까.
지난 2월 4일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힘뿐 아니라 민주당과 조금 우호적인 제3세력들까지도 다 한데 모아 상생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정치를 바꾸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대선에서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제로 가는 것이 좋다는 입장 피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재명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제를 선택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바로 다음 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 전 대통령 발언이 이 대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 대표 성향상 문 전 대통령이 말한 것을 무조건 따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존중’했을까. 지금이 총선 시즌이 아니라면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문에 상당 수준의 ‘박해’를 받았던 기억을 이재명 대표가 갖고 있는 한,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 의중을 따른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 의중을 따른 것은, 공천을 둘러싼 친문과 친명의 갈등, 즉 ‘문·명의 충돌’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병립형을 고집했다가는 공천에 불만을 품은 친문들이 이를 빌미로 탈당을 결행할 수도 있다. 이때 총선 승리는 요원해진다. 이런 이유에서 이 대표가 준연동형을 받아들인 것인데, 준연동형 제도 아래서 선거에 이기려면 위성정당이 필수다. 그래서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안 만들 수 없게 됐다. 물론 위성정당을 만들면, 본인들이 주장했던 준연동형 비례제 실시 명분을 또다시 부정하는 꼴이 된다. 당연히 ‘보여주기용(用) 자기 합리화’가 필요해진다.
이런 합리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정치판의 주특기인 ‘남 탓’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먼저 만들었기 때문에 민주당도 만들 수밖에 없고, 위성정당 방지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국민의힘이 동의하지 않아 만들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남 탓’을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남 탓’에도 논리적 타당성은 있어야 하는데, 논리성이 결여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쨌든, 준연동형으로 결론 났기에 이제 양당은 위성정당 창당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찐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을 어렵게 만들 것이 확실하다. 이른바 제3지대 연합 정당, 즉 개혁신당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3지대의 4개 정치 세력이 합당한 배경이다. 비례대표로 의회에 입성하기는 힘들게 됐으니 지역구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위해서는 바람(風)이 필요한데, 소수 정당이 각자도생하면 바람이 일어나기 힘들다.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몸집’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합당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합당에 성공한 개혁신당은, 당 내부에서 각 정파의 ‘승리 가능 지역’을 배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구(舊)새로운미래 세력은 호남과 수도권 중 호남 원적지 유권자가 많은 곳에 집중적으로 출마하고, 구(舊)개혁신당은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TK 지역을 집중 공략하며, 원칙과상식 세력의 경우, 수도권에 집중하는 식이다. 이런 3지대 연합 정당 출현으로 양당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국민의힘은 중도층으로의 세력 확장이 어려워졌고, 민주당은 정권 심판론으로 선거를 치르기 어려워졌다.
양당 모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은 맞지만,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졌다. 선거 승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거 구도다. 가뜩이나 국민의힘이 운동권 심판론을 들고나오면서 정권 심판론이 희석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개혁신당이 거대 양당 심판론까지 들고나오니 정권 심판론은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정권 심판론이 건재하다 해도, 개혁신당이 더욱 강하게 정권 심판론을 밀어붙이면, 민주당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민주당은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결국, 민주당은 승리를 위해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썼지만, 그 꼼수 때문에 선거가 더욱 어려워지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 투표용지는 분명 50㎝가 넘을 것이다. 이런 투표용지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에는 새로운 흥밋거리이자 웃음거리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웃을 수 없다. 오히려 창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정치는 왜 이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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