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붙어있고 싶은 남자, 어떻게든 떨어지고 싶은 여자

이유리 2024. 2. 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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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을 것을 알고도 알마를 사랑한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한국 사회에서 딸,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깨우쳤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을 매개로 풀어본다. <편집자말>

[이유리 기자]

가수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가요를 기억하는지. 새해가 시작되던 날, 음악 큐레이션 앱이 골라준 노래다.

찾아보니 1994년에 발표된 곡이다. 사춘기가 막 찾아왔던 시절, 이 노래를 접하고 '가수 목소리는 내 취향과 멀어도 가사만큼은 참 좋네'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러고는 당시에, 마음에 다가왔던 구절을 노트에 옮겨적기도 했다. 바로 이 대목이다.

"불안한 듯 넌 물었지 사랑이 짙어지면
슬픔이 되는 걸 아느냐고
하지만 넌 모른 거야. 뜻 모를 그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걸."

가사를 적다 보니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찡하게 좋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릴 때는 이 가사가 일종의 아포리즘 같아서, 마냥 멋져 보여서 무심코 옮기기만 했는데 지금은 가사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와서다.

사랑이 두려운 이유는, 슬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낀 내 가장 큰 행복이 불완전연소되면, 나를 질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슬픔이 된다. 그런데 슬픔이 된 사랑이, 때로는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니? 이 무슨 앞뒤가 안 맞는 얘기란 말인가.

<2인 초상화>에 담긴 비극
 
 <오스카 코코슈카-20세기 미술의 발견>(김금미 옮김, 예경, 1996)에 수록된 <코코슈카와 알마의 2인 초상화>
ⓒ 이유리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극작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라면, 이 노래 가사에 어쩌면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랑에 내재된 치명적인 슬픔과 경이로운 힘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912년 4월 12일, 26살의 코코슈카는 7살 연상의 알마 말러(Alma Mahler, 1879~1964)를 처음 만났다. 알마는 누구였던가. 그녀는 오스트리아 사교계에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로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1년 전, 9년을 이어온 구스타프와의 결혼생활이 끝나고 말았다. 심장병을 앓던 남편과 사별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 33살. 여전히 매력적이었던 젊은 알마 앞에 코코슈카가 나타났다. 그림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가 "제멋대로이며 괴짜이지만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화가, 코코슈카 말이다.

평소 코코슈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던 오스트리아 화가 카를 몰(Carl Moll)이 자신의 의붓딸 알마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코코슈카에게 부탁한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의 계기였다. 심미안을 갖추고 있던 알마는 코코슈카의 재능과 매력을 바로 알아보았다.

알마는 자신을 그리려 계부의 집으로 온 코코슈카를 옆방으로 끌고 간 뒤, 그 앞에서 아리아 '사랑의 죽음'을 애절하게 부른다. '사랑의 죽음'은 고대 켈트인의 옛 전설을 바탕으로 창작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등장하는 노래로, 이졸데가 연인 트리스탄의 품에서 죽어가며 부르는 아름다운 아리아다. 코코슈카는 단박에 알마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마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코코슈카는 두려웠을 것이다. 사실 알마는 남편과 사별하기 전부터 독일의 유명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염문을 뿌리던, 바람과 같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난도질할 확률이 높은 위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닌 것. 그는 자신의 삶 속으로 알마가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렇게 애원할밖에. "알마, 나는 그 어떤 눈도 당신의 드러난 가슴을 보는 게 싫어. 나이트가운을 입은 채든, 옷을 입은 채든, 당신의 사랑스러운 육체의 비밀을 지켜줘."

알마에 대한 코코슈카의 열정은 2년의 연애 기간 동안 알마에게 보낸 400통의 편지로 증명된다. 함께 살다시피 한 연인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뿐만이 아니었다. 코코슈카는 오로지 알마의 초상만 닳듯이 그린다.

자신의 감정처럼 거칠고 격렬한 그림이었다. 터질 듯한 감정을 느린 붓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어, 손가락이 동원됐다. 왼손바닥을 팔레트 삼아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뭉치듯 던진 후, 물감 위를 손톱으로 긁어 선을 그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 중 하나가 1913년에 완성된 <코코슈카와 알마의 2인 초상화>이다.
   
이때 알마는 둘 사이의 아이를 임신한다. 코코슈카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이 그림을 '약혼 그림'이라고 불렀다. 불행은 그것이 코코슈카만의 생각이었다는 데 있었다. 그림 속 코코슈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손을 뻗은 채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그러나 알마는 어떤가. 그녀는 침착한 표정으로 반대쪽을 흘낏거린다. 소설가 토마스 만이 그랬던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지는 법"이라고. 그림은 이미 코코슈카가 곧 직면할 패배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알마는 자신에 비해 너무 뜨거운 코코슈카의 열정이 부담스러웠다. 급한 대로 그녀는 코코슈카가 '완벽한 걸작'을 완성한 뒤에야 그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코코슈카의 열정의 온도를 낮춰줄 거라 기대했지만, 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알마의 말이 코코슈카의 가슴 속 사랑의 불꽃에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것이다.

그는 이 '약혼 그림'이 자신의 '완벽한 걸작'이 될 것이라며 의욕을 불태웠고, 1913년 2월 말쯤 코코슈카가 이 그림을 거의 완성하자 알마는 그와 결혼하게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기어이, '약혼 그림'은 탄생했다. 코코슈카는 알마와의 약혼을 모두에게 공표하기 위해 그 그림을 베를린 분리파 전시회에 출품했고, 알마는 결국 극약처방을 내린다. 코코슈카의 아이를 낙태해버린 것이다.

제목이 바뀐 그림
 
 <오스카 코코슈카-20세기 미술의 발견>(김금미 옮김, 예경, 1996)에 수록된 '바람의 신부'
ⓒ 이유리
 
사랑과 계절의 공통점은 시작과 끝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왠지 이 사랑이 곧 끝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코코슈카는 알마에게 애원한다. "제발 나를 사랑한다고 많이 편지해줘. 그림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그 애원 끝에 그린 그림이 바로 <바람의 신부>이다.

코코슈카는 애초 이 그림의 제목을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지었다. 둘의 사랑이 시작됐던 날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날씨의 악마'의 이름인 <바람의 신부(Windsbraut)>로 바꾼다.

독일어로 '회오리바람'을 뜻하기도 하는 '바람의 신부'는 그림 속 남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 사방에 미친 돌풍이 휘몰아치는데도 편안히 잠든 여자와 대조적으로, 남자는 혹여나 푸른 바람이 여자를 빼앗아갈까 봐 두 눈을 홉뜬 채 불안해한다. 이 두 사람은 바로 코코슈카 자신과 알마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코코슈카는 <바람의 신부> 완성 전 "폭풍에 날리는 휘장 끝자리에 서로 손을 잡고 누워있는 우리의 표정은 힘차고 차분해"라고 알마에게 다정히 편지했지만, 알마는 이 그림을 두고 "코코슈카는 나를 자신에 의지해 도움을 청하는 여인처럼 그렸다. 자신은 마치 온몸에서 힘을 뿜어내 거친 파도를 가라앉히는 국왕처럼 묘사했다"고 차갑게 평했을 뿐이었다.

먼저 사랑의 끝에 도달한 알마는 코코슈카를 떼어놓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것이다. 그녀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코코슈카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화가 난 코코슈카는 '남자다운 남자를 원한다'는 알마의 바람대로 오스트리아 황제의 기병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바람의 신부>를 팔아야 했다. 당시 황실 기병대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개인 소유의 말을 끌고 가야했기에, 말을 구입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코코슈카의 사랑을 증명하던 <바람의 신부>는 그렇게 둘의 품을 떠나갔고, 둘의 사랑도 마침내 끝났다. 코코슈카가 전선에서 머리에 총을 맞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사이, 알마는 예전에 사귀었던 그로피우스와 다시 만나 결혼했고 딸까지 낳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2인 초상>
 
▲ 오스카 코코슈카, <2인초상(올다와 코코슈카)> 1966년, 캔버스에 유채, Oskar Kokoschka / ProLitteris, Zurich - SACK, Seoul, 2024
ⓒ ProLitteris, Zurich - SACK, Seoul, 2024
 
이별의 후유증은 길고 오래갔다. 코코슈카는 제목 그대로 자신의 애끊는 심정을 담은 <코코슈카의 내장으로 실을 잣는 알마 말러>라는 그림을 그리고, 알마와 오스카라는 이름을 순서만 바꾼 <알로스 마카르(Allos Makar)>라는 시도 지었다. 심지어 알마와 똑닮은 실물 크기 인형을 주문해 극장에 동행하는 등 자나깨나 함께 하기도 했다. 드디어 코코슈카가 사랑 때문에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랬다. 코코슈카 스스로도 자신이 미친 사랑 속에서 산화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사랑과 계절의 공통점은 또 있다는 것. 바로 한 계절과 사랑이 지나가면, 새로운 계절과 사랑이 또 찾아온다는 점이다. 코코슈카에게도 새로운 계절이 왔다.

독일의 나치 정권에 항의하는데 열을 올렸던 코코슈카는 결국 나치에게 '퇴폐작가'로 찍혀 1934년에 체코 프라하로 이주하게 된다. 반 나치작가로 이미 프라하에서 유명했던 코코슈카는 어느 날 그의 예술을 흠모하던 변호사이자 예술 감정가인 팔코프스카에게서 저녁식사 초대를 받는다. 그렇게 흔쾌히 팔코프스카의 집에 갔다가, 그의 딸 올다 팔코프스카(Olda Palkovská)을 만나게 된다.

올다는 코코슈카보다 29살이나 어렸지만,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코코슈카를 오직 화가로서 존경했을 뿐 사윗감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팔코프스카 부부의 극심한 반대가 이어졌다.

아마 올가에게 코코슈카와 알마의 사랑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말들도 쇄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코코슈카는 주저했지만, 올가의 사랑은 확고했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위험한 사랑에 맹목적으로 뛰어드는 올가에게서 코코슈카는 자신의 옛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둘의 사랑은 평화와 안정을 주었다. 나치의 핍박에 지쳐있던 코코슈카에게 올가는 푸딩과 초콜릿 파이를 정성껏 요리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둘은 매일 저녁 영화관으로 데이트를 나갔고, 함께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며 산책했다. 그렇게 사랑을 쌓아온 그들은 1941년 드디어 결혼한다.

코코슈카는 올가의 사랑 덕분에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이란 자신을 무자비하게 파괴할 뿐인 존재라 생각했는데, 그 사랑이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 증거가 여기 있다. 코코슈카는 1966년 또다른 <2인 초상>을 그린다. 아내 올다와 함께 한 코코슈카의 모습이다. 알마와 함께 했던 <2인 초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흐뭇한 모습으로 아내를 본다. 원 없이 사랑해 본 사람 특유의 여유를,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서 엿봤다면 과한 말일까. 올다 역시 편안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림이 완성된 1966년은 그들이 스위스 제네바 호수 옆에 평생 소망해왔던 집을 마련해 존경받으며 평화롭게 살았던 때였다. 그림에서도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코코슈카는 성숙한 태도로 알마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알마, 당신은 여전히 길들지 않은 나의 야생동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추신을 덧붙였다. "코코슈카의 가슴은 당신을 용서하기에." 그러나 알마의 반응은 어떠했던가.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코코슈카는 나와 헤어진 후 가치 있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둘은 한때 공인된 연인이었지만, 사랑을 '제대로' 한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이원진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나는 이 노래의 제목이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아닌 것을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랐다. 나는 항상 능동적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주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는 운명의 손에 붙잡혀 '시작되는'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는 사랑 앞에서 우리가 애써 '쿨함'을 연기하는 것도, 사실은 주체성을 찾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사랑 앞에서 자주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능동적인 태도로 사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소설가 공지영이 말했던가. '사랑은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라고. 비장하게 상처받기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랑이 내게 가할 수 있는 슬픔에 항복하듯 '수용'하는 것. 그리하여 코코슈카가 그랬듯, 사랑이 주는 고통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길어낼 수 있었던 단단함으로 생을 다시 한번 으스러지게 껴안아 보는 것. 그것이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속 수수께끼 같던 가사가 전하는 해답일 것이다. "뜻 모를 그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걸."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오스카 코코슈카-20세기 미술의 발견>, 김금미 옮김, 예경, 1996 <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문학동네, 2013 <창조적 시선>, 김정운 지음, 아르테, 2023 <예술가의 지도>, 김미라 지음, 서해문집, 2014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 공지영 지음, 폴라북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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