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8곳 관심갖던 송파 재건축, 유찰..몸사리는 건설업계

김원 2024. 2. 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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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송파동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조합이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응찰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말 진행된 이 아파트 재건축 현장설명회에는 현대건설·대우건설·GS건설·포스코이앤씨 등 대형 건설사 8곳이 참석했다. 이후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입찰 참여 의향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마감을 앞두고 두 건설사가 차례로 응찰 의사를 철회하면서 자동으로 유찰됐다.

1984년 준공해 올해로 41년이 된 가락삼익맨숀(936가구)은 서울 지하철 3·5호선 오금역과 5호선 방이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더블 역세권’으로 송파구에서도 뛰어난 입지를 자랑한다. 용적률 179%로 사업성 역시 나쁘지 않다.

이번 유찰을 두고 정비업계에서는 ‘낮은 공사비’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이 ‘하이엔드(고급화) 브랜드’를 희망하면서 3.3㎡(평)당 공사비를 810만원으로 제안했는데, 건설사들은 이런 조건으로는 적정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침체기에도 미분양 걱정 없다’는 서울에서조차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시공사 확보에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중구 신당9구역 재개발 조합은 공사비를 3.3㎡당 742만원에서 840만원으로 인상했지만, 지난해 1월 이후 3차례 입찰에서 모두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우성4차 역시 2차 입찰까지 시공사를 확보하지 못하자 공사비를 3.3㎡당 760만원에서 810만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7차는 공사비를 3.3㎡당 907만원으로 높여 잡았지만, 아직 시공사를 찾지 못했다.

김경진 기자


일반적으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공사비는 조합이 정한다.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내면서 희망하는 공사비를 적는데, 이를 수용한 건설사가 입찰에 응하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 건설사가 역(逆)으로 조합에 입찰 가격 이하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시공사 선정 유찰이 잦은 데에는 원자잿값, 인건비 등 공사 원가상승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노무·장비 등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인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말 121.80에서 지난해 12월 153.26(잠정치·2015년 100 기준)으로 3년 새 25.8%나 뛰었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12.3%)보다 2배가량 높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조사) 건설사는 원가상승,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등을 고려한 적정 공사비를 원하지만, 일단 조합은 최대한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고가 마감재 사용 등의 단지 고급화를 원하는 조합원들의 요구도 더해진다. 조합은 비싼 고급 자재를 사용하면서도 저렴하게 시공하길 원하는데, 건설사는 적정 이윤을 줄이면서 수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서울에서는 조합원에게 큰 이익이 돌아가는 저층 아파트 재건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며 “사업성 확보(조합원 분담금 최소화)에 부담을 느끼는 조합 입장에선 공사비를 최대한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옥 기자


현재 대부분 정비사업지에서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되기도 한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저가 수주를 할 경우 향후 발생할지 모를 ‘갈등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일감 확보, 브랜드 가치 유지 등을 위해 마진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출혈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요즘처럼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수익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 서울의 정비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형 건설사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올해 목표 수주를 지난해 실제 수주액보다 최대 20% 이상 낮추는 등 보수적인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공사비 상승에 따른 건설사의 선별 수주 현상이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2~3년 후 주택 공급 부족을 야기하는 등 부동산 시장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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