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건국전쟁'의 박수엔 이유가 있다
남다른 집안 분위기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에서 자행돼온 전 국민적 이승만 폄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 지금도 집 이곳저곳의 책꽂이에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업적을 기술한 관련 서적 10여 권이 손때 묻은 채로 꽂혀 있다. 대한민국 번영을 이끈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1953)이나 독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한 평화선(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선언·1952) 발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상공회의소 제주포럼 연설에서 언급한 농지개혁(1950) 등등…. 뛰어난 외교 역량을 토대로 시대를 앞서간 이런 공은 쏙 빼고 과오만 부각한 초·중·고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이승만을 편향적으로 배운 다른 사람들보다 그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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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로 드물게 38만 흥행 가도
4·19 이면의 역설적 상황 다뤄
교과서가 안 다룬 평가에 울림
」
이승만을 재조명한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30만명(14일 현재 38만명)을 넘기며 흥행 가도를 달린다기에 보러 가면서도, 그래서 오히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저 숙제하는 심정으로 일단 영화 예매는 했지만 내심 '뭐 새로운 게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무방비로 영화를 보다 도입부부터 울컥했다. 요즘 말로 '국뽕' 차오르는 영웅적 면모의 1954년 맨해튼 100만 인파 속 카퍼레이드 동영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반대로 그의 가장 치욕스런 과오인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촉발한 4·19 시위 직후 서울대병원 문병 장면에서였다. 주위 만류를 뿌리치고 다친 학생을 위로하러 달려간 그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며 한없이 죄스럽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를 가까이에서 보필한 김정렬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 『항공의 경종』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부정을 보고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며 "한 사람도 더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며 하야를 결심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증언이 나온다. 영화는 사진으로도 미처 다 담지 못한 그의 진심을 이렇게 수 초 동안 울먹이는 표정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국익이나 국민 의사에 반하는 잘못을 해도 진정한 사과는커녕 남 탓이나 남일 말하듯 하는 요즘 여야 정치인들의 유체이탈식 화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생 그토록 이 땅에 뿌리내리려고 노력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민주주의에의 각성을 목격하고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게 비록 자신의 정치적 사망과 맞바꾼 것이라도 말이다. 실제로 그는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비난한 적이 한 번도 없다(『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오히려 하야 후 사저인 이화장에 머물 때 대만 장제스 총통의 위로편지에 '나는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 불의에 궐기한 백만 학도가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답장까지 썼다. "이승만은 4·19를 유발한 부정적 존재인 동시에 4·19를 촉진한 긍정적 존재"라는 평가(박명림 등『이승만 대통령 재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줄곧 꿈꿔온 문명 부강한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힘쓰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그는 교육을 가장 중시했다. 왕을 몰아내려는 역모죄로 1899년 투옥된 후 1904년 29살 나이로 옥중 집필한『독립정신』서문에는 '무식하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올바로 행하며,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또 원한다'고 썼다. 영화에도 그가 교육에 기울인 노력이 잘 나타나 있다. 건국 후 대통령 취임 이후뿐만이 아니라 일제 치하 1910~20년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하던 시절부터 8개 섬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학생을 모으고,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진 아이를 구해 공부시킨 감동적인 스토리가 나온다. 차별 없이 공부하라고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까지 지었다.
심지어 6·25 전쟁 중에도 학교 문을 닫는 대신 전시연합대학을 세우고, 전후 복구의 원동력이라며 대학생의 병역 유예 조치를 했다. 이런 정책 덕분에 광복 직후 70%가 넘었던 문맹률을 크게 낮췄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교육 기적을 이뤄냈다.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이후 박정희 시대 산업화는 물론 4·19라는 민주화의 토대를 이뤘다. 영화 말미에 "이승만이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기관차가 달렸다"는 내레이션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과연 소문대로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는데 한 자리도 비지 않은 영화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부끄러움 말이다.
글=안혜리 논설위원, 그림=이유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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