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독고다이" 이효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통점
[이진민 기자]
신은 공평하다. 한국에는 이효리를, 미국에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주셨으니. 태어난 연도와 나라, 음악 장르와 콘셉트까지 뭐 하나 겹치는 건 없다. 허나, 시대를 관통하는 이름을 가졌다. 게다가 얼핏 보면 비슷한 생김새 탓에 데칼코마니처럼 같으면서 다른 두 사람을 비교하는 시선이 있다. 두 사람이 맞닿는 교차점, 그 안에는 생(生)으로 증명한 여성의 목소리가 있다.
지난 14일 이효리는 모교 국민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맡았다.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명쾌하고 선명한 철학에 졸업생은 물론, 대중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화제에 오른 이효리의 축사와 함께 떠오른 건 2022년 테일러 스위프트의 뉴욕대 졸업식 축사. '누군가에게 조언할 자격이 없다'며 운을 뗀 둘의 축사는 같은 곳을 향했다. 이효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명, 그 진폭에 휩싸이고 싶다.
▲ 가수 이효리가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국민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스 |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이효리의 말은 거창하지 않다. 2017년 JTBC <한끼줍쇼>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에게 건넸던 한 마디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묵직한 질문에 짓눌렸던 건 사실 어린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었을까. 아무나 되라는 그의 조언에 위로받은 건 끝내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평범하기에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효리가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말라. 인생은 독고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을 누구보다 아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여러분 자신"이라며 "앞으로 나아가 많이 부딪히고 다치고 체득하면서 진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며 축사를 끝맺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당부는 돌고 돌아 <한끼줍쇼> 속 한 마디와 연결된다.
삶이란 누군가 정해진 훌륭함의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 오직 고민하고 살아가고 선택해야만 알 수 있다는 것. 마음대로 살라는 말이 어째 자신의 조언을 따르라며 '가르침' 설파에 나선 베스트셀러나 자기 계발 유튜브보다 어렵고, 섬찟하다.
직접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타인의 생각과 철학에 기대어 자발적인 정신적 노예로 묶여있는 것이 쉽기 때문일까.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는 이효리의 언어를 건네받은 건 다름 아닌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는 "나의 경험은 실수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다시 일어나서 먼지를 털고 누군가 아직 당신과 놀고 싶어 하는지 보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 말했다. 끝으로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극복할 것이고 그 경험을 토대로 성장할 것"이라 덧붙였다.
이효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축사에 열렬한 반응이 따랐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춘에게 필요한 건 '갓생'(신을 뜻하는 'god'과 한자 生의 합성어)을 위한 미라클 모닝이나 취업 성공 신화, 창업 대박 사례가 아니다. 당신의 실패가 성장으로 이어질 거란 아이콘들의 말에 다시 희망을 켜는 젊음이 있다.
▲ 가수 이효리가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국민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공연을 마치고 임사말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변화해라. 그리고 자신을 재창조해라.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편하고 당신이 하긴 어려운 거로."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속 <미스 아메리카나>에서 여성 아티스트에게 가해지는 압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중의 잣대는 유독 여성 아티스트에게 엄격하다. 매 활동마다 성공과 성장을 입증해야 하고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해져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야 한다.
이효리는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에 출연해 "센스 하면 한가닥 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센스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 정도의 센스로 살아남기 쉽지 않다"며 "후져 보이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 바 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마음껏 실수하고 성장하라며 남을 다독였던 그들이 정작 자신에겐 엄격한 상황. 상반되는 발언에서 두 세계를 관통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이 직면한 모순이 드러난다.
분야를 떠나 여성의 목소리는 쉽게 시험대에 오른다. 완벽하되 거만하지 않고, 날카롭되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여성의 말. 착한 여자 아이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속마음처럼 여성들은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고, 실패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빼앗긴다. 단지 메이크업이 유행과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굴욕 논란'에 올랐던 이효리처럼 작은 실수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고 웃음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젠 이효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돌려주고 싶다. 촌스럽고 진부한 콘셉트로 무대를 채워도 된다.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다시 정정해도 좋다. 그들도 원하는 만큼 실수하고, 실패했으면 좋겠다. 실수와 실패를 통해 성장할 권리, 그건 이효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도 있다. 누군가의 실수를 사랑하는 여성들, 나는 그들의 연예계 졸업식을 영영 빼앗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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