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와 13년을 살았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선민 2024. 2. 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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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험... 이젠 '지금'을 껴안고 싶습니다

거식증, 폭식증 같은 하위 질환명으로 더 잘 알려진 섭식장애(Eating Disorders)는 현상으로서의 증상만 놓고 보면 수 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뿌리 깊은, 인간적인 질환이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모임으로, 지난 2023년 2월 말 국내에서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주최했다. 올해도 두 번째 행사(2/28~3/5)를 준비 중이다. 이번 연재기사를 통해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하고 준비해 온 과정과 고민을 펼쳐 보이고,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들과 가족 그리고 치료자의 글을 통해 지금-여기에서의 섭식장애의 진실을 밝히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더 자세한 소식은 여기(https://www.instagram.com/rabbitsubmarinecol/)서 확인가능하다. <기자말>

[이선민]

끝없을 것 같던 심연에서 빠져나와 소중한 존재와 만날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만삭의 임산부로 섭식장애건강권연대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13년 넘게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오며, 날로 무너져 가던 저의 몸 속에 생명이 생긴 건 제 생애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에 대한 공포... 매일 먹은 것을 토해냈다
 
 아티스트, 예술기획자인 이선민은 '섭식장애건강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직접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2023년 하반기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지원으로 진행한 '안전한 식탁' 프로그램.
ⓒ 이선민
섭식장애 증상의 시작은 청소년 시기 시작된 음식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이었습니다. 먹는 순간 나에게 닥칠 재앙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과 상상이었죠. 처음에는 어제보다 더 마르기 위해 노력하는, '끈기 있는 나'라는 가면으로 스스로 속이면서 속이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12년 간 하루도 예외 없이 먹은 것을 토해냈습니다. 라면 1개도, 케이크 1조각도 아무렇지 않게 소화시킨다는 건 불가능했죠. 시간이 갈수록 허기짐은 심해졌고, 구토를 위한 폭식은 늘어 갔습니다. 버는 돈의 80% 이상이 이걸로 나갔고, 쉬는 날이면 눈 뜬 뒤 잠들기 전까지 먹고 토하기 일쑤였습니다. 돈과 시간, 현실적 문제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한 거죠.

인간관계에서도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가까운 몇몇에 내가 섭식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 한동안은 모두가 내 식사에 엄청난 관심을 쏟는 시기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걱정과 관심은 어느 순간 외면으로 바뀌어버리게 되지요.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아프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스물 다섯 어린 나이에 시작한 결혼생활은 언젠가부터 망가졌습니다. 초반에는 관계의 충만감 덕분이었는지 섭식장애도 호전되는 것 같았죠. 하지만 그 무렵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정신과 처방 약이 큰 부작용을 일으킨 게 화근이었습니다. 불면과 불안, 공황장애까지 심해지자 전 배우자는 저를 도울 마음을 접었던 것 같습니다. 불화가 식탐을 자극하고, 저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구토하는 악순환이었지요.

2022년 초, 저는 불면과 거식증, 우울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고 있었습니다. 몸무게는 약 37Kg, 하루에 샐러드 한 그릇을 겨우 먹을 정도로 식생활도 형편없었습니다. 몸은 점점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깨닫지도 못할 만큼 삶을 내팽개치고 있었던 겁니다. 그 해 10월 제 몸은 입원을 요할 만큼 피폐해졌고, 상황을 정리해야만 그 다음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혼을 택했습니다.
 
 글쓴이가 식사치료를 시작하면서 직접 만들어 기록해 나간 '식사일기' 노트.
ⓒ 이선민
 
힘겨우면서도 몇 년 간 놓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떠나오며 저는 처음으로 제 오랜 병을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혼이라는 결정이 어떤 난데없는 용기를 일으킨 건지, 저는 전에 없던 적극성으로 삶에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제 오랜 섭식장애에 대해 부모님과 터놓고 처음 이야기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부모님, 그리고 거기에 제가 다시 상처를 받으며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회피도 포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섭식장애가 없는 삶'을 꿈꿔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뜻이 맞는 두 명 친구와 함께 '섭식장애건강권연대'를 만들었습니다. 13년간 혼자 지켜온 비밀을 털어놓고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기대감이 망설임을 눌렀습니다. 새 동반자가 된 지금의 아이 아빠는 당시 제 삶의 지원군이자 동료가 되어 주었고, 참 많은 응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에 힘입어 처음으로 세상에 섭식장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열렸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빠르게 답을 얻어가는 기분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설 자리가 세상에 생길 수도 있겠구나!'

부푼 기대가 생겼습니다. 섭식장애를 절실히 고민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이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설렜던 것은, 그때까지 약물치료 외엔 대안을 몰랐던 제게 새로운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길들, 거기서 얻은 용기 

제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용기'였습니다. 자기연민으로 상처를 핥고만 있는 대신, 모든 걸 수용하며 나를 인정하고 마주해 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병에 대해 찾아보고, 새 치료법도 알아보며 적극적으로 섭식장애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모습 자체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영상 브이로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https://www.youtube.com/@sunmeanlee1311).

물론 그 와중에도 수차례 넘어졌습니다. 응급실에서 눈을 뜬 날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날 이후 뭔지 모를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과 달리 삶이 온전하게 느껴졌고, 놀랍게도 오랜 시간 저를 좀먹어 온 우울이 눈에 띄게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몸을 추스른 후, 저는 식사치료를 시작하며 지난 13년 동안 잃어버렸던 일상의 감각을 다시 배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당사자로 식사치료를 처음 갔을 때의 긴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지요. 그날 저는 밥을 '다'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평소 끼니를 먹듯이 1인분의 밥과 반찬을 다 먹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13년 만에 처음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세 끼니를 챙기며 식사량을 늘려가 몸무게도 조금씩 회복됐습니다. 폭식이나 구토가 바로 기적 같이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폭식과 구토 습관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하루 두세 끼니의 밥을 소화시키고 간식도 먹습니다. 불안하거나 초조해 하는 법 없이 식사하며 웃고 떠들 수 있습니다. 제겐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러다 지난해 6월에 접어들 무렵, 새 생명이 생긴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실은 임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컸습니다. 아직 섭식장애 증상도 심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누군가와 삶을 꾸리기에는 무리 아닌가 걱정이 컸습니다. 

스스로 아직 너무 나약하고 자격이 없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만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실은 너무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밖에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곬인 저는 늘 내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를 열렬히 원한 건지도 모릅니다. 제 동반자는 저를 믿어주었고 매번 큰 확신을 보여주었기에, 그와 함께 아이를 길러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선민은 식사치료를 시작하면서부터 유튜브 브이로그를 통해 자신의 삶 경험을 기록했고, 몇 개월 뒤의 임신 소식까지 고스란히 그의 브이로그에 담겼다.
ⓒ 이선민
  
그 직후, 섭식장애건강권연대가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지원을 받게 되어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안전한 식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이 말할 기회를 얻고, 또 참가자들이 모여 자기 삶과 음식을 연결해 생각해본 뒤 직접 식탁을 차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가한 모두에게 단 한 번이라도 즐겁고 행복한 식탁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직접 기획한 행사를 통해 경험 당사자, 가족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두렵기만 했던 임신 기간을 버텨내는 데 큰 용기가 되어 준 기회들, 인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먹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고, 먹고 난 뒤의 죄책감 역시 쉽게 떨쳐내지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섭식장애 증상에 어떻게 대처하며 육아를 해야할지도 조금 막막합니다.

내가 잘 참아낼 수 있을까? 아이에게 혹시라도 영향이 가면 어떻게 하지? 여러 고민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경이롭게 변해가는 제 몸과 처음 보는 몸무게, 처음 느껴보는 몸의 감각, 모성애까지... 생명과 함께한 지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저는 참 많은 것을 새롭게 마주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려 합니다. 저는 이미 아이를 통해 너무 많은 변화와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는 부족한 보살핌에도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찾아온 '생명'은 제게 하나의 메시지 같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아 볼 만하다는.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아니라는.

섭식장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습니다. 완치라는 희망에 매달리기보다는, 섭식장애와 함께 어떻게 잘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당장 오늘 폭식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오늘 폭식을 하지 않았다고 섭식에 대한 강박이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테지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혹여나 폭식을 하고 구토를 해도, 충동을 잘 참아냈다가 내일 다시 토하게 되더라도, 오늘 여기 눈 앞의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요. 훗날을 미리 걱정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여기, 당장 마주하는 순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잘 다독이며 가려 합니다. 

'지금'을 껴안고 싶습니다. 섭식장애와 싸우려고 앉는 식탁이 아닌, 이선민이라는 한 존재가 앉을 행복하고 안전한 식탁이길 기대합니다. 불안에 쉽게 현재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덧붙이며 : 이 글을 쓰고 난 이후 지난 2월 9일 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구토한 것은 단 한 번뿐입니다. 지난 13년을 통틀어 지금만큼 굶주림과 불안감이 먼 나라 얘기 같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이유없이 나와 함께했던 외로움과 공허함, 허기짐이 아이를 돌보며 가득 채워집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민은 아티스트, 예술기획자이자 현재는 '섭식장애건강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섭식장애 담론 개선과 자조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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