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탐방하며 대통령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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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 필자가 가족과 함께 청와대를 구경하고 있다. |
ⓒ 곽규현 |
지난 설 명절 때, 서울에 사는 아들딸을 보기 위해 갔었다. 이왕 서울에 간 김에 날씨도 맑고 좋아서 아들이 청와대 탐방을 사전 예약하고 길을 나섰다. 연휴를 맞아 구경 나온 인파가 제법 많았지만 그렇게 혼잡하지는 않았다. 외국인들도 가이드를 따라 청와대 경내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기에 분주했다.
청와대 본관에서 역대 대통령을 상기하다
▲ 청와대 본관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 모습이다. |
ⓒ 곽규현 |
청와대 본관에 들어서니 TV 방송으로 많이 봐서 그런지 조금은 낯익은 장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국무회의장으로 쓰이던 세종실 앞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서 인상 깊었다. 인물의 특징과 분위기가 잘 묘사되어 작품을 감상하듯이 지나치는데,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국정을 책임졌던 12명의 대통령 초상화를 한꺼번에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분들 중에는 군사력을 앞세워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인물도 있고,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사람도 있다. 반면에 오랜 세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고초를 겪으며 옥고를 치른 분도 계시고,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한 분도 계신다.
청와대를 구경하는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거친 과거 대통령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나는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을 포함하여 11명의 대통령을 맞이한 세월을 살았다. 1980년대까지는 독재와 권위주의가 판을 치고 표현의 자유는 억압된 암울한 시대였다.
그때의 대통령들은 국민 위에서 군림하며 자신들의 정권 획득과 유지에 혈안이 되어 국민의 기본권은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정권을 비판했다가는 큰 처벌이 따랐으며 유무형의 압박이 가해졌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시민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민주 국가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이후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번갈아 가며 대통령을 배출하는 가운데, 여당과 야당 간에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정착된 것 같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대통령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아우르며, 국가 원수로서 국민통합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대통령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또한 대통령의 임무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난 모습도 아름답지 못했다. 대통령 자신의 범죄로 옥살이를 한 분들도 계시니 씁쓸하다.
▲ 청와대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
ⓒ 곽규현 |
이제 청와대는 더 이상 국가 권력의 상징이 아니다. 현직 대통령이 청와대를 구중궁궐로 느끼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소통하겠다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기 때문이다. 시일도 촉박하여 제대로 단장되지 않은 곳으로 무리하게 옮겨간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기어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새로운 대통령실을 꾸렸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이 청와대에 칩거하고 있으면 국민들과의 소통은 잘 이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현직 대통령이 임기 시작과 함께 야심 차게 시작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신선하게 다가온 측면이 있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 확산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중단됐던 출근길 문답은 코로나 상황이 끝났는데도 재개되지 않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관례로 해왔던 신년 기자회견도 KBS와의 대담을 녹화 방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던 대통령은 오히려 불통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면 국민과의 소통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쓴소리에 귀를 닫고 주변에서 듣기 좋은 소리로 아첨만 한다면 청와대를 나와본들 민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데 구중궁궐이나 무엇이 다른가.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이 좀 거북하고 불편하더라도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거기에 진솔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않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임기 동안 국민을 위해 성실하게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을 살피고 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지지하는 세력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쓴소리에도 귀 기울여서 국민 통합에 노력하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다.
언제쯤 우리는 특정 정파의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국민 모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진정한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을까. 국민이 안심할 수 있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대통령의 시대가 열리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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