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해외살이, 부모님과 '영통'하니 감개무량합니다

황성혜 2024. 2.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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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사용 어려워하셔서 편지만 주고 받던 시절 있었는데... 설날 통화 뒤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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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혜 기자]

▲ 무료 영상통화 카카오톡으로 무료 음성통화 및 영상통화를 한다.
ⓒ 황성혜
 
해외 살이를 시작한 지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과 같은 특별한 날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거리가 멀어서, 항공료가 비싸서, 일정이 맞지 않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할 수 없었다.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만, 우리 가족만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10여 년 전부터는 카카오톡 음성통화 및 영상통화를 이용하여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와이파이로 데이터 걱정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지난 설날에도 싱가포르에서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새해 인사를 전했다.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한 시간 늦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서둘러 전화를 드렸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들이 중간에 앉고 나와 남편이 양쪽에 앉았다.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끼웠다.

영상통화로 양가에 건네는 안부인사

먼저 시댁에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버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어머님도 옆에 앉으셨다. 아버님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자동 회전되게 변경하신 후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끼우셨다. 각도를 조절하여 얼굴을 잘 보이게 하셨다. 아버님은 평소에도 남편과 아이들과 자주 영상통화를 하시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다루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드린 후 떡국을 드셨는지 여쭤 보았다. 아침에 간단하게 떡국을 끓여 먹었다고 하셨다. 이미 1월 1일, 새해 첫날에 차례를 지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있으셨다. 그동안 아버님이 장이 안 좋아서 고생하셨는데 다행히 좀 나아졌다고 하셨다.

어머님과 아버님 모두 얼굴이 좋아 보였다. 우리도 아침에 떡만둣국을 끓이고 동그랑땡, 깻잎전을 해서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해외에 있어도 명절을 소홀히 보내지 않았다고 느끼셨는지 흐뭇해하셨다. 건강이나 아이들의 학업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30여 분이 흘렀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다고 하고서 영상통화를 마쳤다.

친정에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셨다. 친정 부모님은 영상통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당신들의 얼굴이 화면에 제대로 보이게 스마트폰의 각도를 잘 조절하지 못하셨다.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이마 또는 입만 보이거나, 얼굴은 아예 보이지 않고 벽만 보였다. 이렇게 저렇게 한번 해 보시라고 해도 잘 하시지 못했다. 

다행히 오빠네 가족이 와 있어서 조카가 엄마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 나니 부모님 모습이 한 화면에 잘 들어왔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얼굴이 밝고 보기 좋다고 하셨다. 친정 부모님은 경상도 분들이라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신 편인데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니 멋쩍어하셨다. 엄마 옆에 앉아 계셨던 아빠는 그새 자리를 옮기셔서 더 이상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화면을 통해 본 부모님 모습이 건강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한국과 1시간 시차가 있고 비행기로 약 6시간 소요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영상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25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이 그리우면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미국에 살았을 때는 내가 보낸 편지를 부모님이 받아 보시는 데만 일주일 정도 걸렸다. 부모님이 바로 답장을 써서 보내주셔도 결국 내가 편지를 보낸 지 2주일 정도 돼야 답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 우편함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답장이 왔는지 확인했다. 친구들이나 동생과는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방법을 낯설어하시는 부모님과의 소통은 거의 편지로 이루어졌다.

급한 이야기가 있거나 정말로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만 인터넷 국제전화 카드를 사용해서 전화했다. 한번 카드를 구매하면 계속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보통 20달러씩 충전했다. 짧게라도 여러 번 전화하려고 간단히 안부만 묻고 끊은 적이 많았다. 돈이 부족할 때는 받는 이가 돈을 내는 콜렉트콜로 전화를 했다. 비싼 요금에도 부모님은 내가 건 전화를 받아 주셨다. 전화를 끊고 나면 그리움이 밀려와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다.
 
▲ 동그랑땡과 깻잎전 설에 부친 동그랑땡과 깻잎전이다.
ⓒ 황성혜
 
10여 년 전 카카오톡이 출시된 이후에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이나 다른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내려면 파일을 업로드하고 전송해야 했지만 실시간 메시지 전송만으로도 아주 도움이 되었다. 전화통화는 요금이 저렴한 070 인터넷 전화를 이용했다. 인터넷 전화였지만 음질도 좋았고 일반 유선 전화보다 전화요금이 싸서 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이후에 카카오톡에 실시간 사진 전송과 같은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었고 몇 년 후에는 무료로 음성통화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인터넷 전화를 이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음성통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정말 편리했다. 특히 엄마에게 마음껏 전화했다. 특정 음식의 레시피가 궁금하면 전화로 물어보았고,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1년에 한 번쯤 부모님을 뵀지만, 평소 자주 음성통화를 하니 멀리 있는 듯 느껴지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는 카카오톡 비디오콜 기능이 도입되어 스마트폰으로 무료 영상통화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나 가족들끼리 소소한 이야기를 손쉽게 공유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가족 간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곳에 있든 실시간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편지가 오고 가는데 시일이 걸렸고, 전화통화는 통화료 등의 제약이 있어서 물리적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그렇기에 명절이나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가족이 더욱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들과의 소통이 어렵지 않다. 오랜 해외 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카카오톡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의 무료 음성통화와 영상통화 서비스에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특별한 날에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감정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지만 그리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설날, 새언니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부모님의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었다. 사진을 보니 친정이 더 그리웠다. 아무리 부모님과 실시간으로 영상통화를 했더라도 아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제 부모님께 세배를 했었는지, 언제 부모님 생신에 함께 했는지 이제는 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족들 간에 단절되지 않는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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