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이 맞은 '새드 엔딩'... 불성실함의 끝이었다
[박시인 기자]
▲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클린스만 감독은 언제나 미소를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년 만에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
ⓒ 대한축구협회 |
언제나 환한 모습으로 미디어와 팬을 상대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온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는 호감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근무 태만, 거짓말, 불성실한 태도의 결말은 참담했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위원장 마이클 뮐러)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과를 결산하는 자리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경질에 뜻을 모았다.
그리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16일 임원회의 종료 후 공식 프리핑을 통해 "임원 회의에서 어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내용을 보고 받아 의견을 모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2월 말 부임한 뒤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약속 어긴 클린스만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마이클 뮐러 신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벤투 감독의 축구를 이어갈 수 있는 인물을 데려오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 2월 27일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을 전격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과는 전혀 상반된 축구를 구사하는 클린스만의 선임에 모두가 의문을 제기했다. 선수 경력은 화려하지만 지도자로서는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 대표팀을 맡을 당시 2018 러시아 월드컵 북중미 예선에서 부진으로 2016년 경질됐다. 이후 이렇다 할 감독 커리어가 없었다.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 단장에서 잠시 감독직을 맡게 됐는데 10주 만에 페이스북 라이브 도중 사퇴를 선언해 비판을 받았다. 헤르타 베를린 시절을 제외하면 7년 동안 클린스만을 찾는 팀들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근무 태도, 전술 부재 등 감독으로서 역량에 대한 악평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협회 고위층이 절차를 무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낙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초 기자회견에서 논란이 된 상주문제와 관련해 국내에 머무르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약속을 어겼다. K리그 현장을 찾는 대신 유럽파 점검이라는 이유로 해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재택근무 방식을 선호했다. 미국 현지 사업과 각종 방송 출연도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행동이었다. 한국 대표팀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보기 어려웠다. 근무 태만과 불성실함을 극에 달했다.
K리그를 등한시한 채 이미 모든 검증을 마친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주요 유럽파들의 경기장을 찾는데 집중했다.
외유 논란에 대한 팬들의 지적에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 감독은 클럽 감독의 업무 방식과 다르다. 주요 선수들의 파악을 위해선 국제적인 시야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 클린스만 감독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아시안컵 우승을 자신했지만 4강 탈락에 머물렀다. |
ⓒ 대한축구협회 |
아시안컵 대참사... 선수단 관리마저 소홀
부임 초 5경기 연속 무승으로 흔들린 클린스만호는 이후 6연승을 내달리며 조금씩 비판여론을 불식시켰다. 그럼에도 연승 행진에 가려진 위험요소는 남아있었다. 빌드업 체계와 공격 진영에서 디테일한 전술 부재, 넓은 공수 간격의 문제점을 개개인의 퍼포먼스로 상쇄하며 일궈낸 승리가 대부분이었다.
때마침 유럽파들이 주요 리그에서 맹활약하면서 역대급 스쿼드라는 평가 속에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할 적기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2023 아시안컵 본선에 돌입하자 클린스만호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4강까지 올랐지만 매 경기가 답답했다. 조별리그부터 고전의 연속이었다. 요르단,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무승부에 그쳤다.
16강 사우디 아라비아, 8강 호주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간 뒤 승리를 거두며 생존 본능을 발휘했다. '정신력'으로 간주하기엔 플랜A 실패가 뼈아팠다. 2경기에서 체력을 소진한 나머지로 4강 요르단과의 리턴매치에서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0-2로 패했다. 변명의 여지없는 결과였다. 슈팅수 8-17, 특히 유효슈팅 0개는 역사에 남을 굴욕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90분 기준으로 6경기 동안 1승 4무 1패에 그쳤다. 이 중 5경기는 상대에게 리드를 당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6경기 10실점으로 매 경기 상대에게 골을 허용한 것이다. 넓은 공수 간격, 디테일한 전술 부재의 문제점을 노출하고도 이렇다 할 개선 없이 포메이션만 바꿀 뿐 어느 하나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뚜렷한 전술적 색채 없이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세부적인 전술을 주문하기보다는 자율성에 맡긴 것이다. 실제로 선수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격 상황시 자유롭게 플레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 방임 축구의 한계는 명확했다.
대회 운영 능력, 선수단 관리도 낙제점이었다. 과도한 체력 훈련의 여파로 선수들은 아시안컵 기간 동안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다. 패하더라도 16강에 오를 수 있는 말레이시아와의 3차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고 주전들을 풀가동한 여파는 토너먼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선수단 내부 갈등마저 불거졌다. 요르단전을 하루 앞두고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으로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이전 감독때와 비교해 팀 분위기가 좋다고 칭찬한 선수들의 인터뷰와는 사뭇 달랐다.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교체 결정을 발표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
ⓒ 대한축구협회 |
마지막까지 선수탓하는 클린스만
클린스만의 실망스러운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8일 아시안컵 종료 후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때 팬들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시안컵 우승을 호언장담했던 그는 입국 인터뷰에서도 "아시안컵 4강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클린스만은 이틀 뒤 미국으로 떠났다. 대한축구협회는 1년 내내 클린스만의 자유롭고 독단적인 행동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어떠한 제도적 장치조차 없었다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황보관 KFA 기술본부장에 따르면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한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단 내 불화가 요르단전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며 선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회의에 참석한 기술위원들이 지적한 감독의 전술 부재에 대해서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시안컵 졸전에 대해 단 한 차례의 사과조차 없었다. 끝까지 책임을 선수에게 전가하는 모습이었다. 잘못된 감독 선임의 대가는 혹독했고, 한국 축구는 354일 만에 클린스만과의 동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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