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래 거부당한 영화관 '문턱'…"식당도, 커피숍도 늘 막힙니다"
시각장애인 천상미(48)씨는 최근 가족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지만 고민 끝에 가지 못했다. 천씨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장면을 묘사하고 설명해주는 음성해설이 필요하지만 해당 영화관에선 서비스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장면인지 어떤 표정인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대부분 이해할 수 없어 가봤자 소용이 없었다”면서 “음성해설을 해주는 영화관을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가수 강원래씨가 지난 9일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가 휠체어 입장이 안돼 발길을 돌린 사연이 알려진 가운데 시·청각, 발달장애 등 다른 장애인들 역시 영화 관람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영화관에 가기 어려운 이유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좌석이 부족해서만이 아니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족해 영화관까지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나, 영화관에 입장하고 난 다음에도 시·청각 장애인들은 안내자막이나 화면설명 등 보조장치가 없으면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 안모(29)씨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물을 좋아하지만, 고등학교 때 이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영화관에선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에 대한 해설자막이 나오지 않아 내용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는 “해설자막이 나오는 영화관까지 가는 길이 더 힘들어서 집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화면 해설이 있는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서 보는 게 더 편하다”고 꼬집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21조에 따르면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등은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음성해설과 한글자막을 덧붙인 ‘가치봄’ 영화는 전체 영화 중 0.1%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개한 가치봄 영화 상영 현황을 보면 작년 8월 31일 기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영화관 3사의 전체 상영 횟수 382만7739회 가운데 가치봄 영화는 294회로, 0.008%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치봄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1~2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들도 많다. 휴대전화 같은 개인 단말기, 증강현실(AR) 기술적용 안경, 이어폰 등 장비를 활용해 기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식도 있지만 아직 시범단계인 상태다.
시·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 자폐 등 다른 장애인들도 영화관 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혹시라도 남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자폐를 앓고 있는 20대 정모씨는 영화관 가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실제 영화를 본 것은 손에 꼽는다. 갑자기 소리치거나 일어나는 등 돌발행동을 할까봐 영화관에서 그냥 나오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정씨 어머니는 “아들이 복지관에서 단체영화 관람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취미생활이 많지 않은 발달장애인에게 영화는 가장 좋은 문화생활인데도 문턱이 너무 높다”고 전했다. 전국발달장애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은 “외국에는 발달장애 가족 박스가 있는 곳이 있다”면서 “기존 영화관 VIP석을 활용해 3~4명이 함께 앉아 영화볼 수 있는 전용 박스석을 만든다면 발달장애인과 가족들도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강원래씨의 상영관 입장 거부 사연이 알려지고 난 뒤 여권에서는 영화관 장애인 관람석 지정을 ‘상영관별 1% 이상’으로 구체화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영화관 외에도 식당이나 지하철 등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이동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많은 만큼,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강원래씨가 이번에 영화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지정석 문제라기 보다는 영화관 자체가 계단으로 돼 있어 물리적으로 입장이 어려웠던 것”이라며 “영화관 건물 자체가 장애인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지진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 미용실 등 많은 장소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은만큼 장애인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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