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작은 거인' 고요한, 파란만장했던 프로 생활
[곽성호 기자]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초반과 중반, K리그를 흔들었던 전설들이 2023시즌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지난해 시즌 중반 은퇴를 선언했던 박주호를 시작으로 시즌 종료 직전에는 K리그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공격수 이근호가 은퇴를 선언했고 은퇴를 예고했던 염기훈(수원 삼성)과 김창수 역시 현역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에 더해 2024시즌 개막 직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주역인 이범영 역시 현역 생활의 끝을 알렸다.
연이은 은퇴 소식과 함께 2024시즌 시작 직전 한국 축구와 FC 서울의 정신적 지주로서 활약한 한 선수가 은퇴 소식을 알렸다. 지난 2일 서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년간 서울 소속으로 활약한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 고요한이 현역 은퇴를 선언한 것이었다.
▲ FC 서울 '원클럽맨' 고요한 |
ⓒ 한국프로축구연맹 |
1988년생인 고요한의 프로 인생은 비교적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빠르게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토월중학교 졸업 이후 조광래 감독 눈에 띄어 2004년 FC 서울에 입단한 고요한은 이청용과 함께 서울을 이끌어 갈 미래 자원으로 기대받았다. 프로 구단 첫 입성 이후 고요한은 프로 공식전 무대에 발을 들이지 못했으나 R 리그에서 실력을 갈고닦으며 프로 무대 입성을 노렸다.
서울 입성 후 2년간 R 리그에서 15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한 고요한은 2006년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에 성공했다. 지금은 폐지된 리그 컵 격인 삼성 하우젠컵에 선발 출격한 고요한은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맹활약하며 프로 데뷔의 맛을 봤다. 이후 기세를 몰아 세놀 귀네슈(튀르키예) 감독 체제 아래 2007년과 2008년에 리그 5경기 출전하며 예열을 가다듬은 고요한은 2009년 자신의 잠재성을 서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2009년 리그와 컵 대회 포함 20경기에 출전한 고요한은 당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아 A매치 데뷔에도 성공하게 됐다.
국가대표팀 데뷔라는 기쁨의 성취감을 맛본 고요한은 2010년 자신의 첫 프로 데뷔 상대였던 전남을 상대로 프로 데뷔골을 뽑아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1시즌에는 감독이 교체되는 상황 속(황보관→최용수)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를 오가며 맹활약했으며 이듬해에는 최용수 감독 아래 완벽하게 측면 수비수로 자리를 잡으며 서울의 리그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2012시즌 서울의 우승을 도왔던 고요한은 생애 첫 단일 시즌 리그 30경기 출전 돌파 기록을 세우며 팀의 중심으로 거듭나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도 공식전 52경기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서울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도달에도 큰 공을 세웠다.
서울의 중앙과 측면을 완벽하게 책임진 고요한은 2014시즌 시작 직전, 훗날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 13번으로 변경하고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등번호 변경 후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고요한은 리그 32경기에 나와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화끈한 실력을 선보였고, 이듬해에도 리그 33경기에 나와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철인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2016시즌에도 팀의 주축으로 활약한 고요한은 감독이 시즌 중반 교체되는 상황 속(최용수→황선홍) 흔들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전북 현대를 제치고 서울의 기적과 같은 역전 리그 우승을 도왔다.
▲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됐던 고요한 |
ⓒ 대한축구협회 |
서울에서의 맹활약에 이어 2017시즌, 신태용 감독이 지휘하던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고요한은 월드컵 진출의 명운이 걸린 우즈베키스탄전에 출전해 환상적인 수비력을 선보이며 월드컵 진출을 도왔으며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 출전해 하메스 로드리게스(상파울루)와의 맞대결에서 완벽한 실력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다. 신태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한 고요한은 3차전 독일전에 황희찬(울버햄튼)과 교체되며 경기장을 밟았고 2대 0 승리에 숨은 공신과 같은 역할을 해내며 자신의 생애 첫 월드컵 여정을 마쳤다.
월드컵 복귀 이후 소속팀 서울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 속 팀을 지휘하고 있던 황선홍 감독이 팀을 떠났으며 성적은 강등권까지 추락하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은 극심한 부진을 이겨내지 못한 채 리그 11위로 강등 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팀의 강등이 걸린 상황 속 서울을 구해낸 영웅은 고요한이었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1차전 1대 1의 팽팽한 흐름을 깨는 역전 골을 기록한 고요한은 2차전 박주영(울산)의 쐐기를 박는 결승 골을 도우며 잔류 1등 공신으로 맹활약한 것이었다.
2018시즌 리그 36경기에 나와 9골 5도움을 기록하며 잔류 공신으로 활약한 고요한은 이듬해에도 활약을 이어가며 리그 3위 수성에 큰 공을 보태며 시즌을 종료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을 통해 서울과의 동행을 이어갔던 고요한은 무릎 수술 여파로 리그 15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나올 때마다 확실한 실력을 선보였다. 2021시즌 박진섭 감독(부산) 체제 아래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던 고요한이었으나 시즌 후반 부상 회복 이후 안익수 감독 아래 맹활약을 펼치며 강등권에 안착했던 팀을 다시금 살려내는 저력을 보여주며 클래스를 다시 입증했다.
▲ 2004년부터 2023년까지, 고요한의 가슴에는 늘 FC 서울이 함께했다. |
ⓒ 한국프로축구연맹 |
2004년 FC 서울에 입단해 2023년 축구화를 벗는 그 순간까지 고요한은 늘 서울의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유니폼만을 착용했다. 지난 25년간 프로 생활을 경험했던 고요한은 서울 소속으로 K리그 통산 366경기 출전 34골 30도움 기록했다. 서울은 고요한의 업적을 인정해 고요한이 2013시즌부터 달고 뛰었던 등번호인 13번을 구단 최초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2024시즌 공식 홈 개막전 경기에서 은퇴식을 거행하며 선수로서 팬과의 마지막 인사를 건넬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격부터 중원 그리고 수비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선수 개인이 아닌 팀 구성원으로서 환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고요한이었다. 비록 경기장에서 과한 행동으로 논란이 될 때가 있었으나 이를 제외하면 매 순간 프로 무대에서 성실한 플레이와 몸 관리를 통해 성장하며 클래스를 입증했던 고요한은 K리그 선수들의 큰 본보기가 됐다.
FC 서울을 넘어 K리그를 대표했던 고요한, 그의 축구 인생 2막을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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