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극엔 왜 비싼 구리를 쓸까…대기업 전쟁터된 동박[배터리완전정복](24)
얇은 구리 호일 ‘동박’
연평균 27% 성장 전망
SK, 롯데, 고려아연 등
국내 대기업 앞다퉈 진출
편집자주 - 지금은 배터리 시대입니다.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곳에 배터리가 있습니다. [배터리 완전정복]은 배터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 학생, 배터리 산업과 관련 기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배터리의 기본과 생태계, 기업 정보, 산업 흐름과 전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분리막-음극이 겹겹이 쌓여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양극과 음극은 수 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두께의 집전체(集電體·current collector)에 각각 활물질이 얇게 코팅돼 있다.
집전체는 양극과 음극을 물리적으로 고정해 주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부수적으로는 양극과 음극에서 발생하는 열을 밖으로 방출하는 역할도 맡는다.
무엇보다 집전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튬이온 배터리가 충·방전하는 과정에서 전자가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충전 과정에서는 양극에서 리튬이 이온화하면서 전자 1개가 분리된다. 이 전자는 양극의 알루미늄(Al) 집전체를 통해 도선을 거쳐 음극의 구리(Cu) 집전체로 이동한다. 구리 집전체를 거친 전자는 음극에서 리튬이온과 만나 환원 반응을 일으킨다.
집전체는 전기 전도성이 우수하면서도 활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하는 역할은 동일한데 양극과 음극에 서로 다른 물질을 집전체로 사용하는 이유는 이 같은 전기화학적 특성에서 연유한다.
양극은 음극보다 전위가 높다. 이에 따라 양극 집전체는 높은 전위에서도 전기화학적 반응이 안정적이면서도 전기 전도성이 높은 알루미늄을 사용한다. 알루미늄은 매우 풍부한 광물로 가격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에서는 알루미늄을 음극에 사용할 수 없다. 리튬이온과 반응해 합금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대신 낮은 전위에서 안정적이면서 전기 전도성이 우수한 구리를 사용하게 된다.
음극에 쓰는 얇은 구리 포일을 동박(copper foil)이라고 부른다. 동박은 인쇄회로기판(PCB)에 많이 쓰였으나 지금은 이차전지 음극 집전체로 더 많이 쓰인다. 배터리용 동박은 얇을수록 좋다. 그래야 더 많은 음극 활물질을 넣어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
이차전지용 동박은 10㎛ 이하의 두께로 제작된다. 머리카락 두께의 15분의 1 굵기다. 전기차용 배터리에는 6~8㎛ 두께의 동박이 주로 사용된다. 최근엔 4㎛대 두께의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동박은 얇으면서도 휘지 않고 균일한 표면의 포일을 만드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강도와 연신율(금속이 끊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비율)이 높을수록 좋다. 동박 제조는 고도의 공정 제어 기술이 필요한 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동박을 제조하는 과정은 크게 롤(roll) 압연 방식과 전해도금 방식으로 구분된다. 롤 압연방식은 롤러 사이로 구리를 통과시키며 얇은 구리 포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는 주로 두께 35㎛ 이상의 제품을 생산한다. 압연 방식으로 동박을 생산할 경우 기계적 특성은 우수하지만 생산 비용이 비싸고 박막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전해 도금 방식은 전기분해 원리를 이용해 구리를 도금하는 방식이다. 압연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얇게 만들 수 있어 전기차 배터리에는 주로 사용된다.
전해 도금 방식은 우선 황산구리 수용액에 백금으로 이루어진 양극과 드럼 형태의 티타늄 음극을 넣고 전류를 통과시킨다. 이때 수용액 속의 구리가 음극의 드럼으로 이동해 달라붙으면서 얇은 막을 형성하게 된다. 동박의 두께는 드럼의 회전속도와 전류를 조절하면서 제어할 수 있다. 생산된 동박은 내화학성, 내열성, 접착력 강화, 산화 방지 등을 위해 표면처리 후 절단하고 출하한다.
"연평균 27% 성장"…대기업 잇단 진출
동박은 리튬이온 배터리 무게의 약 11%를 차지한다. 원가 기준으로는 8%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SNE리서치는 이차전지용 동박 시장 규모(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전자기기 포함)가 2022년 36만t에서 연평균 27% 성장해 2030년에는 207만t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동박은 과거 일본에서 전량 수입했으나 1990년 일진머티리얼즈가 제품을 상용화하면서 수입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초기 설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진입이 쉽지 않다.
현재 국내 동박 기업으로는 SKC,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고려아연 등이 경쟁하고 있다. 동박 생산에는 전기가 많이 소모된다. 국내 기업들은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해 전기료가 싼 말레이시아 등 해외 거점을 중심으로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SKC는 2019년 KCFT를 인수해 SK넥실리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KCFT는 LS엠트론의 동박사업부를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인수해 세운 회사다. SK넥실리스는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동박 사업을 빠르게 확대했다. 국내 정읍 공장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폴란드, 미국에도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2025년까지 한국과 말레이시아, 유럽, 북미 등에서 연산 25만t 규모의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생산능력은 정읍과 말레이시아 1공장을 포함해 연간 약 8만t 규모다.
SK넥실리스는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4㎛ 두께의 동박을 1.4m의 광폭으로 총 30㎞ 길이로 뽑아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 회사는 6㎛ 두께의 동박을 77㎞ 길이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23년 3월 롯데케미칼에 인수된 후 사명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바꾸고 롯데그룹의 지원으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북 익산과 말레이시아에서 연간 6만t의 동박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말레이시아 공장 증설과 스페인 공장 건설 등을 통해 연간 생산능력을 2028년 24만t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솔루스첨단소재의 모태는 1960년 미국에서 설립된 전자소재 업체 서킷포일(Circuit Foil)이다. 서킷포일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 2014년 두산그룹에 인수됐다. 두산은 2019년 인적 분할을 통해 두산솔루스를 출범시켰다. 이를 2020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끄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가 인수하며 솔루스첨단소재가 탄생했다.
솔루스첨단소재는 반도체 등에 들어가는 동박과 이차전지용 전지박(동박)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6㎛ 두께의 전지박을 30㎞ 이상 권취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차전지용 동박은 헝가리에서 연간 1만5000t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헝가리 공장 증설, 캐나다 공장 신설 등을 통해 2027년까지 전지박 생산 능력을 16만3000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2020년 100% 출자를 통해 동박 제조 자회사인 케이잼(KZAM)을 설립했다. 케이잼은 2022년 울산 온산 제련소 부근에 동박 생산 공장을 완공했다. 이 회사는 현재 수요처 인증 절차를 밟고 있으며 2024년 하반기에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연간 생산 규모는 1만3000t 규모이며 2027년까지 6만t 규모로 증설할 계획이다.
치열한 동박 한·중전현재 이차전지용 동박 시장은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인 증설로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으로는 왓슨(Wason), 누오데(NuoDe), 지아위엔(JiaYuan), 지우장더푸(JIujiang Defu) , 창춘(Chang Chun)등이 있다. SK넥실리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왓슨, 누오데 등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후루카와(Furukawa), 니폰덴카이(Nippon Denkai)가 동박을 공급하고 있다.
점유율은 시장 조사 업체마다 약간 다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국내 시장 조사업체인 SNE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SK넥실리스가 22%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으며 왓슨이 19%, 창춘 18%,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13%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시장조사업체인 QY리서치의 조사 결과에서는 2021년 기준 누오데가 12%로 1위이며 SK넥실리스가 9%, 일진머티리얼즈가 8%로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이중 왓슨은 SK가 2019년과 2020년 두차례에 걸쳐 3800억원을 투자하며 30%의 지분을 확보한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왓슨은 2021년 기준 6만t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LG화학은 2021년 더푸에 4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더푸는 2021년 기준 약 4만9000t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왓슨, 더푸는 비상장 기업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한국, 중국의 복수 기업으로부터 동박을 공급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넥실리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왓슨 등 공급사를 다양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SK넥실리스가 주 공급사다. SK온은 SK넥실리스와 왓슨, 창춘 등의 동박을 사용한다. 솔루스첨단소재는 테슬라에 직접 동박을 납품한다.
속도조절하는 韓 동박 기업들SK, 롯데, 고려아연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이차전지 동작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최근 업황은 좋지 않다. 전기차 배터리 성장 둔화로 수요가 꺾인 데다 중국 기업들까지 공격적으로 생산을 확대하며 글로벌 재고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2024년 하반기부터 동박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3년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인 동박 기업들은 설비투자(CAPEX) 축소에 나섰다. 이에 따라 당초 제시했던 증설 계획이 계획대로 추진될지도 미지수다.
SK넥실리스의 모회사인 SKC는 지난 2월6일 콘퍼런스콜에서 "올해는 작년에 비해 40~50% 정도 규모를 줄여 효율적인 집행으로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KC는 2023년 설비투자에 1조5000억원을 집행했는데 이중 절반을 말레이시아와 폴란드 공장 증설에 사용했다. 2024년 설비투자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만큼 동박 증설도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롯데케미칼도 2월7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투자에 대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전방 산업의 약세 등을 고려해서 투자는 진행하나 진행 시점 같은 부분은 조금 더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사의 중장기적 전략과 주요 전략에 관련된 프로젝트들은 차질 없이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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