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한국의 비바레리뇽을 찾아서

김재중 2024. 2. 1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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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평화로울 때 선행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나 폭력이 난무하는 힘든 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선함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선함을 실천한다면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프랑스 중남부 해발 900m에 위치한 작은 고원, 비바레리뇽(Vivarais-Lignon). 수 세기 동안 혹독한 날씨 속에 고립된 채 가난했던 이 고원 사람들은 취약한 외지인을 외면하지 않았다.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습관을 키우며 그들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안전한 스위스로 실어 날랐다.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 때는 개신교도들을 보호했고, 프랑스혁명과 뒤이은 공포정치하에서는 가톨릭 신부를 지켰다. 19세기에는 산업도시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왔고 그다음에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아이들을, 스페인 내전 중에는 스페인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려왔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유대인뿐 아니라 나치 점령지에서 도망쳐 나온 수많은 난민을 보호해줬다. 고통받는데 익숙했던 이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줬다. 홀로코스트 당시 이들이 기울인 노력이 어찌나 희귀했는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셈’은 열방 의인의 동산에 비바레리뇽을 포함한 단 두 공동체만을 기념하고 있다.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인류학자 매기 팩슨이 쓴 ‘비바레리뇽 고원’이라는 책을 손에 넣었을 때 이 작은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선하게 행동하는 공동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저자는 비바레리뇽 고원을 찾아 이 작은 곳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용맹하게 이방인을 지지할 수 있었는지 천착한다. 갈 곳이 없어 숨어든 난민을 보호한 공동체의 아름다운 전통을 소개하며 ‘선함은 타고나는가’ 성찰한다.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가해자인 나치의 부역자들과 방관자들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선함의 뿌리를 보여준 비바레리뇽 고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에요.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뿐이에요.”

누구나 삶의 어느 지점에서 자기 코앞에 총을 겨눈 나치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유대인은 어디 있나?”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에 닿기 위해 목숨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들,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북으로 향하는 중남미 사람들 그리고 보호받지 못하는 시리아·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난민들. 고향을 떠나 살 곳을 찾아 나선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은 난민에게 인색한 나라로 꼽힌다.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지만 2022년 기준 난민 인정률(심사결정자 수 대비 인정자 비율)은 2.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3%)의 10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의 희박한 난민 인정 가능성에 불안해하며 신청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국내 거주 이주민은 250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4%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열악한 주거 환경에 직면해 있다. 외국인에 대한 환대는 그 사회의 품격을 말해준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한 여정에 있는 나그네이고, 본향을 떠나온 이방인 아닌가.

한국교회가 한국의 비바레리뇽 고원이 될 순 없을까. 크리스천은 선함의 뿌리가 하나님이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의 임재하심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하나님이 선하신 것처럼 한국교회도 선한 공동체로서 난민과 이주민을 내 이웃처럼 품어줄 수 있다면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의 선행을 보고 그들의 선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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