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볼모로 한 의료계 집단행동 용납 못 한다
‘빅5’ 병원 등 전공의 사직에 진료 공백 우려
“증원 찬성” 76%…싸늘한 국민 여론 살펴야
정부-의료계, 머리 맞대고 건설적 대안 내길
대형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4년 만에 집단 행동을 예고하면서 국민 건강권이 위험에 빠질 우려가 커졌다. 서울의 5대 종합병원을 가리키는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은 오는 19일 전원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 발표에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면서다. 전북 원광대병원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도 전공의 사직서 제출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종합병원은 현실적으로 전공의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응급실이나 수술실 등에서 중대한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의대생들도 한꺼번에 휴학계를 내는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의대 대표자들은 그제 긴급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동맹 휴학을 결의했다고 한다. 의사 배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만히 두고 볼 문제가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오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이후 첫 회의를 열고 앞으로 투쟁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에 두고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정부는 의사 면허 취소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원칙 대응 입장을 밝혔다. 전임 정부가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4년 전에는 코로나19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의료계 반발에 정부가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게 현 정부의 판단이다.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 찬성 비율이 높은 것도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국민 네 명 중 세 명 이상(76%)이 의대 정원 확대에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응답했다. 반면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는 응답은 16%에 그쳤다.
의료계는 이제라도 의대 증원이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인정하고 집단행동을 멈춰야 한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 건 오만의 극치였다. 의사가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건 국가에서 면허를 받았기 때문이고,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의료계가 불만이 있더라도 정부와의 논의에 대승적으로 참여해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의대 증원에 ‘무조건 반대’라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현재 한국 의료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내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국가 차원에서 의료의 기본 틀을 새롭게 짜야 할 시점이다. 특히 응급의학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저절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의료계는 어떠한 경우라도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직역 이기주의는 용납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동시에 대화와 설득의 노력도 포기해선 안 될 것이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도 실제로 현장에 의사가 배출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당장 급한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정부는 정원 확대로 의대 교육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세밀한 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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