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아니었어?" 러 거리 가짜 판친다…푸틴이 키운 '짝퉁 경제'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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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벅스 대신 '스타즈 커피', 유니클로 대신 '저스트 클로즈'. "
오는 24일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주년을 맞는 가운데, 상당수 서구 기업들이 떠난 러시아에서 외국 제품·서비스를 베껴 파는 일명 '복사(Copy) 경제'가 뜨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 등 ‘비우호국가’의 특허를 도용한 ‘짝퉁'을 사실상 합법화하자 러시아 기업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3일 일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런 대표 사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서 철수한 맥도날드의 공백을 메운 현지 브랜드 '브쿠스노 이 토치카'다.
러시아어로 '두말할 것 없이 맛있다'는 뜻의 이 브랜드는 맥도날드의 러시아 사업을 인수한 사업가 알렉산드르 고브르가 만들었다. 앞서 맥도날드는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에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다며 현지 매장 850곳을 닫았다. 이후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러시아 내 자산 매각을 발표했다.
그 뒤 현지 업체가 맥도날드 러시아 사업부문을 인수해 새 브랜드로 재개장했다. 여기서는 맥도날드 '빅맥'과 비슷한 '빅히트' 세트 등 닮은꼴 메뉴가 버젓이 팔리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스타벅스의 러시아 매장을 인수한 스타즈 커피 역시 로고부터 메뉴, 손님 이름을 컵에 적어주는 주문 방식, 매장 분위기까지 스타벅스 판박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여름 문을 연 러시아 의류기업 저스트 클로즈도 일본 브랜드 유니클로를 거의 베낀 수준이라고 일본 언론은 지적했다. 앞서 유니클로는 모스크바에 유럽 최대 점포를 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폐점했다. 저스트 클로즈는 바로 그 자리에 등장했다.
지난해 말 모스크바 저스트 클로즈 매장을 찾은 마이니치신문 취재진은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쓰인 로고와 진열대, 상품 등이 유니클로를 연상케 한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유니클로와 너무 비슷하다"는 취재진의 지적에 현지 직원은 "닮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러시아 브랜드다"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미국 KFC 치킨,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 스페인 의류브랜드 자라 등이 러시아 기업들의 '복사' 대상이 됐다.
'비우호국가'의 제품이 러시아에 우호적인 중국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사례도 있다. 중국 합작공장에서 현지 생산된 일본 닛산과 독일 폭스바겐 자동차는 중국 브랜드를 달고 러시아에 수입됐다. 이미 철수한 현대차 러시아 공장에서는 남은 부품으로 차를 조립해 중국 브랜드를 붙여서 팔 계획이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러, 특허 도용 사실상 합법화
러시아에서 복사 경제가 판치게 된 건 푸틴 대통령의 정책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000곳 이상 외국 기업들이 영업을 정지하거나 현지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푸틴 정권은 외국 기업을 헐값에 러시아 측에 매각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러시아 업체들이 사실상 서구 브랜드를 헐값에 살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한 러시아 정부가 저작권 보호 등 규제를 완화하면서 외국 제품·서비스를 베끼기 쉬운 환경이 마련됐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비우호국가’의 특허 도용을 사실상 합법화했다.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가는 경제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롯한 미국·영국·호주·일본·유럽연합(EU) 회원국 등 48개국이다.
러시아 기업들이 허가 없이 비우호국가의 특허를 써도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게 골자다. 실제 러시아에선 맥도날드 철수 이후 맥덕(McDuck)으로 상표출원을 시도한 예가 있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국민이 보유한 특허와 상표권 4800건도 무단 도용될 위기에 놓였다.
이를 두고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매트 피셔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식재산권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런던정경대학 지적재산권법 부교수인 시바 탐비세티도 "이 법은 사유 재산을 몰수하는 것과 유사하다"면서 "서구 기업의 지식재산권(IP)을 러시아가 (무단으로) 쓰게 된다면 (전쟁이 끝나도) 서구 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재개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정권의 비호 덕에 미국·유럽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오히려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실제 러시아 경제 성장률은 2022년 –1.2%에서 2023년 3%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가 올해도 2.6%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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