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언어사 지휘한 김수경 평전

김남중 2024. 2.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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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길]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
푸른역사, 552쪽, 3만원
김수경이 1986년 캐나다에 사는 아내 이남재에게 보낸 편지 속에 동봉한 사진. 1943년 결혼한 부부는 도쿄와 서울을 거쳐 평양으로 함께 갔으며, 한국전쟁 시기에 남과 북으로 엇갈리며 헤어졌다. 김수경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98년 평양을 방문한 이남재와 재회했다. 푸른역사 제공


월북 언어학자 김수경(金壽卿·1918∼2000)에 대한 평전이 나왔다. 김수경은 ‘20세기 남북한을 통틀어 최고의 국어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특히 북한어의 맞춤법과 문법을 기초한 인물이었다.

김수경은 현행 북한 철자법의 기초가 된 ‘조선어 철자법’(1954년)의 초안 작성 담당자였으며, 해방 이후 북에서 최초로 공간된 ‘조선어 문법’(1949)을 집필했다. 1961∼1962년 3권으로 쓴 ‘현대 조선어’는 북한 대학에서 교과서로 쓰였고, ‘조선어 문체론’(1964)을 통해 북한 최초로 문체론을 체계화했다.

김수경은 북한의 철자법 제정과 문자개혁을 주도하고, 이 과정에서 발음을 표기에 맞추는 ‘표음주의’가 아니라 실제 발음과 다르더라도 같은 어(형태소)는 같은 철자로 표기하는 ‘형태주의’ 원칙을 정립했다. 남북의 표기 차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노동/로동’ ‘이론/리론’ 등에서 보이는 두음법칙 적용 여부인데,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김수경은 1947년 두음은 물론 모든 표기에서 ‘동일 형태소의 동일 표기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은 북한어의 두음법칙 폐지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북한의 한글날 변경에도 김수경의 관여가 엿보인다. 북한은 1948년부터 1월 15일을 한글날(훈민정음기념일)로 기념하는데, 그 전 해에 김수경은 10월 9일은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출판한 기념일에 불과하고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실록에 나온 1443년 음력 12월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경은 북한을 대표하는 언어학자이자 언어정책의 설계자였지만 남한에서는 잊혀진 인물이었다.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제국대 문학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경성경제전문학교 교수에 임용됐으나 1946년 8월 김일성대학의 교수 위촉에 응해 월북했기 때문이다. 월북 후 곧바로 김일성대학 문학부 교원과 부속도서관장을 겸임하면서 1968년 김일성종합대학 중앙도서관 사서로 전직할 때까지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사서 전직 이후 김수경의 흔적은 북한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1988년 평양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 다시 등장하면서 20년 만에 학계로 복귀한다. 이어 1996년 김수경을 주인공으로 한 실화소설 ‘삶의 메부리’가 출간되는 등 복권이 이뤄진다.

2000년 3월 세상을 떠난 김수경은 2013년 일본 도시샤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주최한 심포지엄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의 재조명’을 계기로 북한 외부에 알려진다. 이 심포지엄을 기획한 이타가키 류타(52) 도시샤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김수경 평전의 저자다. 이타가키 교수는 2010년 연구년을 맞아 캐나다 토론토에 갔다가 1970년대에 이민한 김수경의 둘째 딸 김혜영을 만나 “아버지가 북한에서 언어학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김수경이라는 천재 언어학자의 생애를 중심으로 서술하되 분단으로 헤어진 가슴 아픈 가족사와 북한 언어정책의 주초를 놓은 김수경의 언어학을 함께 다룬다. 김수경의 생애는 월북 지식인들의 생각과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케 한다. 남과 북으로 갈려 평생을 그리움 속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야 상봉한 김수경의 가족사는 모든 이산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부터 입수해 일부 공개한 김수경의 ‘참전수기’는 김일성대 교수로서 한국전쟁에 동원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김수경을 통해 식민지 시기 한국어 연구 현황과 해방 이후 북한에서 전개된 언어 정책을 엿보게 한다. 김수경의 연구는 주로 북한에서 전개된 것이긴 하지만 그 성과는 큰 틀에서 한국어학과 한국어사에 편입될 수 있다. 1947년 김수경이 발표한 ‘용비어천가 삽입자음고’는 용비어천가에 사용된 ‘사이 시옷’ 등 삽입자음에 대한 연구로 지금도 이 분야의 탁월한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조사와 활용어미를 함께 아울러 ‘토’라고 지칭하고, 이를 조선어의 한 특성으로 규정한 연구도 있다. 만년에 발표한 ‘세나라시기 언어력사에 관한 남조선학계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1989)에서는 한국의 연구자들에 의한 조선어 계통론, 특히 고구려어와 신라어를 상이한 언어라고 주장한 것을 비판했다. 김수경은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가 문법 구조상의 공통성을 가지며, 음운 체계와 어휘 구성에서는 ‘방언적 차이’가 있지만 다른 언어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일본 소장학자가 이름도 몰랐던 월북 언어학자의 첫 평전을 쓰고, 사회학자가 언어학을, 그것도 북한의 언어사를 상세하게 해설한다는 점은 놀랍다. 저자는 한국사와 한국학을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남한, 북한은 물론 재외 한국인까지 포괄하고 식민지 시기부터 분단, 현대까지 아우르는 ‘코리아학’을 제안한다. 김수경 평전은 지역과 시대, 그리고 연구 분야를 넘어서는 코리아학의 한 성과라고 하겠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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