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한동훈과 하마 용사

지호일 2024. 2. 15.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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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을 이끌고 총선에 나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을 출사표로 내걸었다.

이번 총선을 '운동권 출신 정치인' 대 '능력 있는 동료시민'의 구도로 가져가겠다는 구상이다.

그곳에서 하마에게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물어뜯기는 변을 당하지만 이번에도 기어이 살아남았고, 현지인들은 그에게 '하마 용사(勇士)'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한 가지, 상대를 악마화하는 식의 운동권 청산론은 새로운 정치 리더로서의 한동훈과는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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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국민의힘을 이끌고 총선에 나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을 출사표로 내걸었다. 이번 총선을 ‘운동권 출신 정치인’ 대 ‘능력 있는 동료시민’의 구도로 가져가겠다는 구상이다.

운동권 청산 내지 극복에 대한 문제의식이 근래 들어 불쑥 솟아난 것은 아닐 터다. 한 위원장은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하마에게 물리다’(1985)를 꼽은 바 있다. 지난해 3월 작고한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다독가인 한 위원장이 굳이 이 소설을 고른 건 글의 내용이나 메시지가 그에게 닿은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왜 ‘하마에게…’인지 물었다. 한 위원장은 오에의 작품 중 맨 처음 읽은 것이 이 소설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오에의 소설은 처음 읽을 땐 다 똑같이 전공투(일본의 학생운동 조직) 아니면 히카리(오에의 장애인 아들) 얘기죠. 그런데 두 번째 읽으면 (소설마다) 다 의미가 다르고 깊어요.”

‘하마에게…’는 1972년 일본 나가노현 기타사쿠군 ‘아사마 산장’에서 벌어진 연합적군 내부의 집단 린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사상 단결을 이유로 조직원들이 동료 1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 사건은 일본 사회가 좌익운동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주인공은 말단 조직원으로 사건 당시 산장 분뇨 처리를 담당하던 17세 청년. 살육 현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그는 감옥에서 출소한 뒤 홀로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난다. 그곳에서 하마에게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물어뜯기는 변을 당하지만 이번에도 기어이 살아남았고, 현지인들은 그에게 ‘하마 용사(勇士)’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이후 아사마 산장에서 동지의 손에 살해당한 조직원의 여동생이 그를 찾아 우간다로 향하고,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하마를 보러 가는 장면으로 연작이 마무리된다.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한 사람이 죽은 언니의 동지 중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속에서 맹렬한 기세로 헤엄치는 하마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한 위원장은 특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메시지에 주목했던 것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 학생운동 시기는 구덩이, 거미줄, 고인 물 따위에 비유된다. ‘물의 흐름을 막는 물풀 덩어리에 구멍을 뚫는’ 하마는 이와 대조되는 대상이다. 성질이 사나운 수놈 하마에게 물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던 하마 용사는 그런 활동을 지켜보며 과거 극복의 용기를 얻는다.

한 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었다. 우리 정치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고인 물이 운동권 출신 정치 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운동권 청산론은 아직 태풍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운동권 청산보다는 검사독재 청산 프레임이 더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대통령 임기 중 치르는 대개의 선거가 그렇듯 이번 총선도 현 정부에 대한 평가 성격이 강한 데다 한 위원장 역시 ‘검사 출신 대통령’의 자장 안에 있는 영향이 크다.

한 가지, 상대를 악마화하는 식의 운동권 청산론은 새로운 정치 리더로서의 한동훈과는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야당이나 특정 세력에 대한 반감을 기반으로 하는 이분법적 정치를 통해서는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집권당 대표가 이념 싸움을 하는 모양새는 시대에 뒤처지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지지자들은 한 위원장에게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유형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가 맹렬하게 헤엄쳐 고인 물에 새로운 정치를 흐르게 하는 하마가 될 수 있을는지.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검증은 이제 시작됐다.

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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