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열병

2024. 2. 1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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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잘 몰랐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른들 말씀이 빈말이 아닌 것을 체감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이가 심하게 앓고 나면 뭔가 한 가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생기는 특이한 증상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아이는 이전과 다른 똘똘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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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잘 몰랐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른들 말씀이 빈말이 아닌 것을 체감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이가 심하게 앓고 나면 뭔가 한 가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행동이 갑자기 활발해진다든지 발음이 분명해진다든지 이전보다 훨씬 똘똘해지는 것을 아픈 다음 아이의 행동에서 발견합니다. 모두 다 열병이 지나간 다음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생기는 특이한 증상 한 가지가 있습니다. 머리와 몸은 불덩이인데 손발은 냉골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위험하지만 결국 열은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내 가슴 머리 손과 발의 온도가 비슷해집니다. 그러면 열병이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아이는 이전과 다른 똘똘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앙 성장의 과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예수를 만나 가슴의 뜨거운 열병을 앓으며 신앙은 시작됩니다. 제자들도 그랬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 첫사랑의 열병 탓에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신앙의 이름으로 내려놓고 투신합니다. 배 그물 가족 시간 재능 등.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나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 가슴을 지폈던 첫사랑의 열기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의 일상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교적 카리스마는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반드시 사라지는 때가 온다.” 맞는 말입니다. 종교적 열병은 식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이 식은 후에 가슴을 지폈던 그 열기가 머리와 손발로 고스란히 옮겨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간혹 신앙을 말하면서 뜨거운 가슴만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가슴은 반드시 식는 때가 찾아옵니다. 그렇다고 머리에 종교적 지식만 가득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비정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루터교회 설교자 헬무트 틸리케는 ‘신학자들을 위한 연습’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사상적으로 순수하고 정통적이며 루터처럼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영적인 인간이 되기를 중지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그릇된 신학을 수행하게끔 되어 있다.” 머리에 신학 지식만 가득하고 영성의 습관을 몸에 훈련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종교학자일 수는 있어도 신앙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가슴이나 머리, 둘 중 어느 것을 택하는 것이 바른 신앙일까요. “만약 신앙의 확신과 신학적 지식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결국 둘 다 잃게 될 것이다.”(게르하르트 자우터) 이 말은 확실히 옳습니다. 뜨거운 가슴의 열정과 냉철한 머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를 만나 열병을 앓고 있다면 그 가슴의 열기가 머리로 그리고 손과 발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래서 온몸을 데워야 합니다. 그것이 참신앙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슴만 뜨겁고 어떤 이들은 봉사만 열심히 해서 손과 발만 뜨겁고 어떤 이들은 아는 게 많아서 머리와 입만 뜨겁습니다. 그렇게 한곳만 뜨뜻하다면 다른 곳으로 온기를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십자가 예수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는 자리에 서게 될까 두렵습니다.

어떤 한의사 설명이 생각납니다. 아플 때 열이 한곳에 몰리면 폭탄, 온몸에 퍼지면 기운이 된다고 말입니다. 교회에서만 아니라 우리 사는 모든 자리에 온기를 나르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여기저기 폭탄 가득한 이 세상에도 기운이 날 겁니다. 그 일을 하라고 교회가 있습니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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