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 져야 새순 자란다" 물갈이론 내건 이재명…민주당 술렁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
어찌보면 자연의 순리를 언급한 것이지만, 정치권에서 이 문장은 다른 의미로 읽힌다. 유력 정당의 당 대표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더 그렇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새 가지가 또 다른 새 가지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며 “장강의 물은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말했다. 최근 당 안팎에서 86 운동권과 ‘올드보이’ 청산론이 제기됐지만, 이 대표가 직접 물갈이 필요성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적었다.
이 대표가 물갈이론을 전면에 내건 데 대해 당에선 “친명을 위한 선택적 청산”(수도권 의원)이란 의구심이 나온다. 이 대표로부터 직접 불출마를 권고받은 문학진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경기도 팀’ 비선 농간에 흔들리는 당”이라고 썼다. 문 전 의원은 캠프 자체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이 1위였다고 주장하며 “친위부대를 꽂으려다 보니 비선에서 무리수를 뒀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문 전 의원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은데, 그 입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물갈이 공천의 최대 뇌관으로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서울 중·성동갑 공천이 거론된다. 이 대표가 임 전 실장의 면담 요구를 거부하는 가운데 친명계는 “해당 지역에는 훌륭한 영입 인재를 모셔오도록 지도부 판단에 맡기라”(조상호 법률부위원장)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당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성동갑은 전략지라 공천을 신청받는 곳이 아닌데도 임 전 실장이 계속 공천을 요청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천 불가’ 방침을 내비친 셈이다.
충남 천안을에서 5선에 도전하는 양승조 전 충남지사도 이재관 전 민주당 천안시장 후보의 전략공천설로 벼랑 끝에 몰렸다. 천안 시·도 의원이 잇달아 전략공천 반대 성명을 냈고, 양 전 지사는 “끓어 오르는 분노와 자괴감으로 몸과 마음을 가누기 힘들지만 이것도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한 친문(親文) 의원은 통화에서 “물갈이 공천을 핑계로 이 대표가 껄끄러운 인사들을 하나씩 떨어뜨린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최근 이 대표와 만나 불출마 의사를 밝힌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3선, 서울 도봉갑)은 이날 “총선 불출마를 결심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는 ‘당 상황이 통합 공천과 거리가 멀다고 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런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표 측근 김남근 변호사 내정설에는 “제가 지지하지 않는다. 김근태 정신을 이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표는 이른바 ‘조국 신당’에 대해서는 “누구나 정치활동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 신당 창당으로 윤석열 정권 심판 선거 구도가 흐트러진다는 의견이 있다’는 취재진의 물음엔 “어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경우엔 최대한 목표에 맞게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번 총선은 모든 힘을 다 합쳐야 한다. 단합과 연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 눈높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조국 신당이 4년 전 열린민주당처럼 강경파 인사들의 원내 진입 통로가 될 거란 전망이 많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본격적인 물갈이 행보를 겨냥해 “실상은 ‘찐명’ 밀어주기를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심 없이 오로지 당 대표 한 사람에게 좌지우지되는 민주당은 반드시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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