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가는 무료 급식소 봉사, 불황은 불황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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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기자]
"저 사람, 벌써 몇 번째 먹는지 몰라요. 그것도 고기만 먹어. 야채는 숟가락으로 다 걸러내고."
"예?"
정신없이 반찬을 리필해 주다가 잠시 숨을 돌린 참이었다. 여기 급식소에서 나보다 먼저 오래 봉사해 온 자매가 어느새 곁에 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씩씩거렸다.
내가 봉사 활동을 하는 OO밥집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료 급식소로, "노숙인 및 홀몸 노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곳이다. 몇 년 전부터 봉사한 위 자매는 오래 봉사해왔기에 이런저런 급식소 이용객들에게 충분히 단련되었을 만도 한 자매인데, 그런 자매가 질색할 정도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그 여성 봉사자가 말하는 '저 사람'은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덩치 큰 남자였다. 그는 산처럼 거대한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 두꺼운 안경, 풀어헤친 와이셔츠와 질질 끌리는 풍성한 바지, 거구를 가리고도 충분해 보이는 오버사이즈 패딩을 입어 눈에 확 띄었다.
봉사자 말처럼 과연 그가 앉은 식판 한쪽에는 고기반찬에서 골라낸 야채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남자는 고기반찬만 5번 넘게 "많이 줘요"라고 요청해서 먹고 있는 참이었다. 봉사자가 진저리 칠만도 해 보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주목한 건 그 얼굴이었다. 젊은이라기에는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껏해야 중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급식 시작 전에 다른 봉사자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났다.
▲ 무료급식과 그림자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 무료급식소 주변에 급식 시작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자료사진). |
ⓒ 연합뉴스 |
확실히 지금 저 이용객은 노인이라고 하기엔 분명히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고작 한 명 본 걸 가지고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고 있는데 또 다른 테이블에서 반찬 리필 요청이 들어왔다.
서둘러 반찬통을 가지고 이동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젊은 얼굴이었다. 마치 고시생인 듯 하얀 셔츠에 사각 안경을 걸친 메마른 얼굴로 반찬 리필을 요청하고는 얌전히 밥을 먹고 있었다. '정말이네. 이젠 젊은 사람들도 오는구나.' 갑자기 경기 한파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떨어져 내린 듯 실감이 났다.
내가 봉사 활동을 하는 이 무료 급식소는 공식적으로는 '노숙인과 홀몸 노인'이 대상이지만 실제 이용객 대다수는 노숙인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 곳에 봉사를 하러 나가기 시작한 2년 전에는 분명히 그랬다. 일반인은 어쩌다 한 두명 간혹 섞여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일반인 비율이 부쩍 늘어났다. 이들은 깨끗한 신발, 가방, 시계,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어 겉모습으로도 노숙인과 구별되었다. 내가 봉사하는 급식소는 딱히 이용객에 제한을 두는 곳도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지,' '혼자 사는 노인이겠지'하고 애써 생각하려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기가 정말 힘든 걸까, 아니면 무료 급식소 소문이 퍼져 한 끼 공짜로 먹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해를 넘겨 이번에 나가 보니 그사이 일반인 비율이 더욱 늘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노숙인과 홀몸 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젊은이들까지 이용하는 형편이었다. 우리 사회를 덮친 경기 불황의 그늘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까운 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늘어난 데 비해 이들을 돕는 손길은 점점 줄어드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봉사는 오전, 오후 시간대의 2개 조로 돌아간다. 그런데 내가 봉사 활동을 하는 홀수 주 수요일 오전 기준으로 밥집 봉사자 수는 평균 50명 전후에서 45명 밑으로 떨어졌다. 많은 날에는 봉사자가 56명까지 왔었는데 지난번 봉사 때는 참여 인원이 고작 42명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같은 시간(수요일 오전) 이용객은 작년 평균 320명 정도이던 것이 작년 말 340명, 이번에는 400명 가까이나 되었다. 봉사자 수는 줄고 이용자는 늘어난 것이다. 더구나 이용자 중 일반인 비율이 크게 늘었다. 게다가 이제는 젊은 사람들까지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저런 복잡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어느새 이 급식소를 운영하시는 성직자분과 사무국장님께서 다가오셨다. 그때까지 짜증스러운 얼굴을 풀지 못하고 있던 봉사자가 얼른 다가가 말했다.
"저 사람한테 가서 말 좀 해 주세요. 고기반찬만 몇 번이나 리필해서 먹고 있어요. 다들 고기반찬을 찾아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데."
하지만 성직자 분은 부드러운 표정이다. 그는 "오, 저분, 오늘도 오셨나?" 하시더니 "달라는 대로 그냥 줘요. 불쌍한 사람이야"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나는 이곳에 봉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곳은 나보다 힘든 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 점을 잊고 있었다. '그래, 오래 먹는다고 해도 하루 종일 먹겠어? 언젠간 다 먹었다 하겠지.' 그렇게 마음먹으니 기분이 좀 가벼워졌다.
그렇게 그 이용객에 대해서는 잊고 일하다가 문득 보니 그 사람은 천천히 테이블에서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밥집을 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배가 부른 걸까? 그때까지 그 이용객은 아마 10번 가까이 반찬과 밥을 리필해 먹었을 거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서로를 위하는 부드러운 마음이 있다면 경제 한파 속에서도 다들 버텨 나갈 수 있을 거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간혹 내 몸이 힘들면 잊곤 한다. 저 사람 덕에 이날 봉사를 나가기 시작했던 초심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이용객은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다음 봉사 때에는 그 이용객의 얼굴을 못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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