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탄생 200주년…국내 교향악단 연주 열풍

장지영 2024. 2. 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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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기념 연주
교향곡 11개…장엄한 선율과 압도적 피날레 특징
올해는 클래식계에서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교향악 작곡가인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전 세계에서 브루크너를 기리는 연주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피아노 앞에 앉은 말년의 브루크너. 퍼블릭 도메인

지난 1월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클래식계의 세계적 이벤트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90여 개국에 생중계되는 만큼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인기 있는 신년맞이 이벤트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한 빈필 신년음악회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등 ‘슈트라우스 가문’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올해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카드리유, WAB 121’이 포함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원래 피아노곡으로 작곡된 것을 볼프강 되르너가 편곡한 버전을 연주했는데, 올해 브루크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는 빈필은 틸레만과 함께 2020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11개) 녹음을 시작해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끝냈다. 19세기에 브루크너의 교향곡 2·3·6·8번을 초연할 정도로 인연이 깊은 빈필이지만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스트리아 린츠의 브루크너 하우스 외관. 린츠가 배출한 작곡가 브루크너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4년 3월 개관했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아 1년 내내 브루크너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 위키피디아 커몬스

빈필은 원래 신년음악회의 1부와 2부 사이에 미리 제작한 영상을 삽입하는데, 오스트리아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브루크너와 관련된 장소들이 담겼다. 브루크너가 어린 시절 활동했던 성 플로리안 성당 소년합창단 단원 2명이 브루크너의 발자취를 좇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빈필 신년음악회 외에도 오스트리아에서는 올해 브루크너 200주년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열린다. 특히 린츠의 브루크너 하우스 콘서트홀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에서는 1년 내내 브루크너 관련 공연과 전시가 준비돼 있다.

말년이 되어서야 인정받은 브루크너

빈필 신년음악회가 보여주듯 올해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화두는 브루크너다. 브루크너는 구스타프 말러(1860~1911)와 함께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교향악 작곡가다. 다른 교향곡보다 훨씬 긴 연주시간과 함께 거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선율,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앞세운 압도적인 피날레 등은 브루크너의 특징으로 꼽힌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19세기는 낭만주의의 시대였다. 베토벤을 기점으로 음악이 추구한 정형과 조화가 완벽하게 구현된 이후 그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는 작곡가의 감정과 개성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후기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 음악사에서 유명한 갈등이 벌어진다. 전통을 중시하는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추종자들과 혁신을 추구하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추종자들 사이의 불화다. 브루크너는 바그네리안, 즉 바그너 지지자였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왼쪽)와 구스타프 말러. 브루크너, 말러, 바그너의 머리글자를 딴 BMW는 심층 클래식 애호가들이 듣는 음악으로 불린다. 퍼블릭 도메인

오스트리아 린츠 인근 시골 출신인 브루크너는 13세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기울자 성 플로리안 수도원에 보내졌다. 이곳에서 소년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오르간 등의 악기 연주법을 배웠다. 린츠의 교원양성학교를 졸업한 그는 모교인 성 플로리안 수도원 기숙학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 외에 오르가니스트로도 임명됐는데, 이것이 브루크너가 처음 가진 음악가로서의 공식 직함이었다.

브루크너는 이후 빈 음악원의 음악이론 교수였던 지몬 제히터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7년 가까이 엄격하게 배웠다. 이어 린츠 오페라극장 지휘자 오토 키츨러에게 관현악법을 배우면서 교사 대신 작곡가로 입신할 뜻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오르가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브루크너지만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것은 거의 말년이 되어서였다. 교향곡 7번과 8번 정도가 초연에서 찬사를 얻고 나머지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심한 브루크너가 여러 차례 고쳐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다만 생전에 브루크너에 대한 폄하는 그가 바그네리안이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빈에서 영향력이 컸던 브람스 지지자들이 그를 시골 촌뜨기 취급하며 무시한 것이다. 물론 말러처럼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직접 지휘에 나선 사례도 있지만 극소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브루크너에 대한 평가도 점차 바뀌기 시작해 말년에는 그동안 실패했던 작품들도 호평받게 됐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브루크너의 동상. 위키피디어 커몬스

다만 브루크너의 사후에도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인 교향곡보다 훨씬 길고 어렵기 때문에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어권 밖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음반 산업 성장과 함께 세계적으로 저변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브루크너, 말러(Mahler), 바그너(Wagner)의 머리글자를 따서 BMW로 불리며 심층 클래식 애호가들이 듣는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선 1971년 첫 연주…사실상 90년대부터 공연

국내에서 브루크너 음악의 보급은 매우 늦은 편이다. 1971년 국립교향악단(현 KBS 교향악단)이 홍연택 지휘로 교향곡 8번을 연주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에도 잘 연주되지 않던 브루크너는 90년대부터 조금씩 공연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4~2008년 이동호 지휘 제주도립교향악단의 전곡 연주, 2007~2013년 임헌정 지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부천필)의 전곡 연주, 2014~2016년 임헌정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전곡 연주는 브루크너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다만 브루크너와 함께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말러의 교향곡이 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기 시작한 것에 비교할 정도가 못 된다. 말러가 길어도 선율이 드라마틱하고 화려한 데 비해 브루크너는 차분하면서 반복적으로 악상을 구축하기 때문에 초심자에겐 난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올해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국내 교향악단도 앞다퉈 브루크너 교향곡을 선보인다. 부천필과 광주시향에서 지휘하는 홍석원(왼쪽부터), 인천시향의 이병욱, KBS교향악단의 피에타리 잉키넨.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 부천필·인천시향·KBS교향악단·서울시향

하지만 올해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퉈 연주에 나서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첫 시작은 오는 23일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정주영이 지휘하는 원주시립교향악단의 교향곡 7번 연주다. 이어 오는 28일엔 부천아트센터에서 홍석원이 지휘하는 부천필이 교향곡 6번을 선보인다. 홍석원은 6월 28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광주시향과 교향곡 7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병욱이 이끄는 인천시립교향악단 오는 4월 26일과 5월 17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각각 교향곡 7번과 8번을 잇따라 올린다. 이병욱과 인천시향은 앞서 2022년 교향곡 9번을 연주한 바 있다. 이와 함께 KBS교향악단은 7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한스 그라프 지휘로 교향곡 9번을, 9월 2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로 교향곡 5번을 올린다. 그리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올해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한 얍 판 츠베덴 지휘로 교향곡 7번을 12월 12~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이외에도 아직 발표는 안 됐지만 몇몇 지역 오케스트라들이 올해 브루크너의 교향곡 연주를 예정하고 있다. 다만 연주 레퍼토리가 교향곡 11곡 가운데 후반부의 5~9번에 한정돼 있어 전체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아쉽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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