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민도(民度)와 의도(醫道)

태원준 2024. 2. 1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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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뉘앙스에 특히 민감하다.

어휘가 풍부해서 '아' 다르고 '어'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신타로가 중국인을 폄하했듯이, 주 전 회장은 지방 의료자원이 부족해 서울로 가는 환자들을 '덜 떨어진 시민'으로 깎아내렸다.

의사가 환자에게 '민도'를 지적한다면, 환자가 국어사전에서 꺼낼 단어는 '의도(醫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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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우리말은 뉘앙스에 특히 민감하다. 어휘가 풍부해서 ‘아’ 다르고 ‘어’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공인의 말실수는 이런 뉘앙스를 잘 몰라서일 때가 많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주수호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SNS에서 의대 증원을 비판하며 ‘민도(民度)’를 거론했다. “의사 알기를 노예로 아는 정부”라면서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라고 썼다.

일본 메이지 시대에 영어 ‘citizenship’을 차용했다는 이 단어는 ‘시민의식’을 뜻하는데, 주로 나쁜 쪽으로 사용돼왔다. 망언 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베이징올림픽 당시 “중국인의 민도가 낮아서…” 하며 물의를 일으켰던 표현이다. 신타로가 중국인을 폄하했듯이, 주 전 회장은 지방 의료자원이 부족해 서울로 가는 환자들을 ‘덜 떨어진 시민’으로 깎아내렸다. 뉘앙스를 몰라 실수했다고 볼 수 없는 맥락이라, 그가 평소 환자를 어떻게 여겼을지 짐작케 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민도’를 지적한다면, 환자가 국어사전에서 꺼낼 단어는 ‘의도(醫道)’일 것이다. 의료인이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던 2000년과 2020년 의사 총파업은 이를 정면으로 위배했다. 지금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려 하지만, 정부도 환자도 어떤 언론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의 윤리 의식과 수준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지,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환자의 민도를 운운한 주 전 회장의 수준보다는 우리 사회의 민도가 높다.

의사가 늘어나서 국민이 피해볼 건 하나도 없다.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식의 구닥다리 논리를 끄집어내 반대하던 이들이 여의치 않자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는 둥 노골적인 망발을 쏟아내고 있다. 히스테리컬한 반응 와중에 ‘민도’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입에 담았다. 이제 ‘의도’를 배워가는 전공의들만큼은 지성인답게 판단했으면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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