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위 아 낫 더 월드

천지우 2024. 2. 14.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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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로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운데 구멍 뚫린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올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이때 밤새도록 녹음한 곡이 그 유명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다.

'위 아 더 월드'는 듣고 따라 부르는 순간만이라도 '세계인이 하나'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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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우 국제부장


“이 노래로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운데 구멍 뚫린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올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가운데 구멍 뚫린 플라스틱 조각’은 카세트테이프를 뜻한다. 1985년 1월 28일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스튜디오에 모인 당대 최고 팝스타 40여명 앞에서 아일랜드 가수 겸 사회운동가 밥 겔도프는 이같이 말하며 스타들이 곧 녹음할 노래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이때 밤새도록 녹음한 곡이 그 유명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다. 이 녹음 현장과 뒷얘기를 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은 제목이 과하지 않다. 참여한 가수들의 면면과 결과물 모두 전무후무한 수준이다.

전무후무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죽어가는 생명을 구한다는 낭만적인 기획이 또다시 이뤄지기 어렵다면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나.

‘위 아 더 월드’는 듣고 따라 부르는 순간만이라도 ‘세계인이 하나’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 노래가 나온 지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온갖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는 전보다 훨씬 좁아졌지만, 우리가 하나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은 당최 없다. 옛 시절의 낭만은 카세트테이프처럼 사라졌다.

이 노래를 지금 다시 녹음해 발표한다고 할 때 무엇이 달라질까를 생각해봤다. 옛날에 없던 힙합이 들어가고, 기독교 색채가 강한 가사는 종교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빠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25주년 기념 버전에서 이미 실현이 됐다. 2010년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를 돕기 위해 당대의 스타들이 모여 ‘위 아 더 월드’를 다시 불렀는데 ‘As God has shown us by turning stone to bread’(하나님께서 돌이 빵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여주셨듯이)라는 가사가 빠졌고, 솔로 부분에 래퍼들의 랩이 들어갔다. 감흥은 크게 떨어졌다. ‘위 아 더 월드’를 다시 부르는 기획은 안일하다. 새 노래를 불러야 새로운 감동이 생길 텐데, 예전보다 훨씬 파편화된 세계에서 모두를 감동시킬 노래가 과연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이 에티오피아(원년)와 아이티(25주년)를 돕는 게 ‘위 아 더 월드’ 기획이었다면 다음 대형 프로젝트는 왠지 중동에서 나올 것 같다. 지금 부유한 중동 국가들이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스타들을 빨아들이고 있으니 문화와 연계된 자선사업에도 손을 뻗치지 않을까 싶다. ‘유에스에이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 대신 ‘월드 포 가자’(World for Gaza)라는 식의 슬로건으로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호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구 전역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외국인·이민자 혐오가 커졌다는 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외국인 혐오는 많은 나라에서 거의 시대정신이 돼가고 있다. 내 코가 석 자고, 난민들이 내 나라로 들어오려는 걸 틀어막기 바쁘니 거룩한 연대의 노래가 설 자리는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은 “병든 시대에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거인들에 대한 기억을 잃은 난쟁이들의 시대”라고 했다. ‘거인들’에 위대한 정치 지도자나 사상가뿐 아니라 마이클 잭슨 등 다른 거대한 무언가를 넣어도 말이 된다. 아니다. ‘난쟁이’가 차별·비하 표현이라 쓸 수가 없다. 지금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는 시대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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