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컷오프 심사 전 ARS 전화 발송하면 선거법 위반"

최석진 2024. 2. 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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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배제(컷오프) 심사 전 선거구민들에게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해 자동응답시스템(ARS) 전화를 발송한 예비후보자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당내경선 실시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거나 예비후보자로 등록하기 전이라도 당내경선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이 당내경선에 대비해 공직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경선운동을 한 경우 당내경선운동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른 판결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완준 전 화순군수와 선거운동 당시 전씨의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 A씨에게 각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직선거법위반죄의 성립, 위법성의 인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두 사람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화순군수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2022년 4월 9일∼12일 ARS 전화를 이용해 선거구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음성 메시지를 8만6000회 발송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직선거법 제57조의3(당내경선운동) 1항은 정당이 당원과 당원이 아닌 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해 실시하는 당내경선에서 허용되는 경선운동 방법으로 ▲선거사무소를 설치하거나 그 선거사무소에 간판·현판 또는 현수막을 설치·게시하는 행위 ▲자신의 성명·사진·전화번호·학력·경력, 그 밖에 홍보에 필요한 사항을 게재한 길이 9센티미터 너비 5센티미터 이내의 명함을 직접 주거나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 ▲정당이 경선후보자가 작성한 1종의 홍보물을 1회 발송하는 방법 ▲정당이 합동연설회 또는 합동토론회를 옥내에서 개최하는 방법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 밖의 방법을 이용해 당내경선운동을 한 경우 공직선거법 제255조(부정선거운동죄) 2항 3호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A씨가 직접 녹음한 음성파일에는 "안녕하십니까. 예비후보 전완준입니다. 일하고 싶어서 전완준이 돌아왔습니다. 큰일을 하고 싶습니다. (중략)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성과와 업적을 끝까지 들으시고 꼭 전완준을 선택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재판에서 전씨는 ARS 메시지를 발송할 당시 당내경선이 아닌 컷오프 심사 중이었으므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씨는 4월 19일 심사에서 탈락해 경선 후보자가 되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또 전씨는 음성녹음 파일을 발송하기 전 선거 사무장 등으로 하여금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질의하도록 지시했고,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모두 두 사람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각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민주당 전남도당 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는 예비후보자 심사에 여론조사 40%, 면접 10%, 당기여도 25%, 의정활동 10%, 도덕성 15%를 반영했고 ▲두 사람이 음성녹음 파일을 발송한 기간은 경선 후보자 결정을 위해 경선후보자 적합도에 관한 ARS 여론조사가 진행될 무렵이었던 점 ▲녹음된 내용이 단순히 선거구민에게 여론조사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선택해줄 것을 지지호소하고, 공약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던 점 ▲선거인수가 5만5193명인 비교적 소규모 선거구에서 전체 선거구민 인구수를 초과하는 횟수의 음성녹음파일 발송이 이뤄졌기 때문에 예비후보자 적합도 여론조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점 ▲전씨가 비록 공천 심사에서 떨어져 경선후보자가 되지 못했지만 이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피고인들의 행위는 실질적으로 사전선거운동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서 법이 당내경선운동 방법을 제한하고 있는 입법취지에 반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전씨는 선거 사무장 등에게 선관위에 문의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지만, 선관위 관계자가 "전씨의 선거사무실 사무장이 찾아와 상담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문자메시지 발송에 관한 질의를 했을 뿐 음성녹음파일에 관한 질의는 없었다"고 진술한 점을 지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처럼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위법성의 인식에 필요한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고, 자기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오인함에 있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한편 대법원은 앞서 "공직선거법이 당내경선운동 방법을 제한하는 취지는 당내경선운동의 과열을 막아 질서 있는 경선을 도모함과 아울러 당내경선운동이 선거운동으로 변질돼 실질적으로 사전선거운동 금지규정 등을 회피하는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따라서 당내경선의 실시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거나, 예비후보자로 등록하기 이전이라 할지라도 당내경선에 참여하려고 하는 사람이 당내경선에 대비해 공직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경선운동을 한 경우에는 당내경선운동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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