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참사의 범인(犯人)은 사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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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지난 6일 서울고법 판결은 그 중요성에 걸맞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나 1심 판결에 불복한 피해자들이 재조사나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할 때 '참사의 정쟁화'라는 프레임을 손쉽게 덧씌워 책임을 모면하려는 국가의 폭력성을 우리는 지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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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상소 포기하고 국민에 사죄해야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지난 6일 서울고법 판결은 그 중요성에 걸맞은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판결이 더 비중있는 뉴스로 다뤄진 데 대해 언론인의 한 명으로 자괴감을 떨치기 힘들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기업이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결과는 8000명에 달하는 피해자와 1200명이 넘는 사망자다. 전쟁을 제외하고 이 정도 규모의 희생자를 낳은 참사를 나는 떠올리지 못한다.
이번 2심 판결이 중요한 것은 위험한 상품을 시중에 팔아 피해를 끼친 기업이 잘못한 것일 뿐 “국가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7년 전 1심 판결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피해자 변호인 측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조사한 환경부 문서 등 여러 증거를 추가로 제출해 국가가 범인임을 입증했다.
2심 재판부는 “국가가 유해성 여부를 충분히 검증하고 관리할 의무를 게을리해 집단적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판시했다. 살균제 속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유독 화학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승인한 뒤 10년 가까이 방치한 것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였다. 환경부 등은 이 화학물질들이 포장재 등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해 그 외 용도로 쓰일 경우에 대한 심사나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독극물에 국가 인증 ‘KC’ 마크까지 찍어줬다.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존재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를 우리는 여럿 기억한다. 세월호, 이태원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국가가 어느 지점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실패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매번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묻고 답해온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패배감에 더이상 머무를 수 없지 않은가. 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그 책임을 묻고 입증해 내는 일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1심 판결을 뒤집을 수 있게 된 결정적 증거들이 사참위를 통해 제시된 것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나 1심 판결에 불복한 피해자들이 재조사나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할 때 ‘참사의 정쟁화’라는 프레임을 손쉽게 덧씌워 책임을 모면하려는 국가의 폭력성을 우리는 지적해야 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의 생명 그리고 인권 문제에서 깨어있는 시민은 더 가열차게 정치하고 싸워야 한다. 그 지난하며 위험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인권과 민주주의 수준을 쟁취한 것이다.
국가에 더 많은 관리 책임을 요구할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더 강한 규제 환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목숨이나 정신에 영향을 주는 여러 경제 활동에까지 규제를 완화해 산업을 진흥시키자는 따위의 말들이 별 저항없이 공론화되는 사회를 우리는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반시장주의적 태도가 아니다.
생명보다 돈, 안전보다 속도를 중시하는 국가에 우리는 선진국 같은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 1200명을 죽이고 8000명에게 고통을 가한 기업과 공무원이 버젓이 장사하고 공직에 남아 있게 허용하는 국가를 우리는 거세게 비판해야 한다.
판결에 따른 배상금이 우리가 얻어낼 전부가 될 순 없다. 국가는 상소를 포기하라. 이 참사에 책임 있는 모든 기관의 장(長)과 국가 그 자체는 국민에게 사죄하라.
신범수 편집국장 겸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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