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정권 심판인가, 야당 심판인가
설날 연휴가 끝나면서 휴일 기간 중 오갔을 선거 이야기에 대한 민심의 향방에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 같다. 명절 술상 위에서 나눈 대화에서 다가올 선거의 의미가 어떻게 모아졌느냐에 따라 향후 정치적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대부분의 선거가 그렇듯, 이번 4월의 총선은 일차적으로는 윤석열 정부 2년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클 것이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30% 아래로 떨어졌고 대통령 부인의 이른바 명품백 논란도 가라앉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번 선거를 정권심판으로 간주한다는 응답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처럼 여권이 ‘죽을 쑤고 있는데도’ 정권심판론이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 것은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심사가 다소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권심판이 국정을 이끌어 온 주도 세력의 공과를 심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과연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애매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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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여론 미지근
여소야대 경험한 유권자 심리 반영
국회서 보여준 야당 행태에도 경고
누구에 책임 물을지가 총선 포인트
」
지난 2년의 정치는 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소야대의 정국이었다. 우리는 여소야대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divided government’, 곧 ‘분점(分占)정부’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국가를 이끄는 정부의 담당 세력이 나뉘어 있다는 의미다. 지난 2년의 정치를 회고해 보면, 주요 정치 쟁점을 제기하고 정국을 주도해 온 건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의회라는 통치기구의 한 축을 장악하면서 각종 입법을 주도했고, 주요 인사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민주당의 거부로 부결되었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탄핵 소추되었고, 방송통신위원장이나 검사들, 심지어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탄핵을 고려했다. 인사청문회에서의 문제 제기와 같은 정부 비판의 수준을 넘어, 이처럼 민주당은 주요 공직 인사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법률 제정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왔다. 시급해 보이지 않거나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지 못한 법안도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을 밀어붙여 일단 통과시켰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하면서 그 책임을 전가시켰다. 최근에 무산된 중대재해법 개정 역시 민주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제는 심지어 정치적 경쟁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제도까지 민주당 대표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과거 뉴질랜드에서 선거제도를 개정할 때 두 차례나 국민투표를 거쳤을 만큼 헌정 체계의 핵심 법안이 우리 정치에서는 야당 대표 한 사람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 정부 견제 수준이었던 과거의 여소야대와 달리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토대로 입법, 인사, 예산 등 주요 정치 사안을 주도해 왔다.
문제는 그렇게 강한 권력을 누려왔지만 그에 대한 책임의식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야당이라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 져서 행정 권력을 국민의힘에 넘겨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완전히 ‘들판에 나앉게 된’ 것은 아니었다. 행정부는 잃었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를 장악한 분점정부의 한 축이었다. 강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그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던 민주당은 그래서 무책임했다. 서구 정치에서 ‘무책임한 야당’은 정책 결정 과정에 소외된 극단적인 소수파 정당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정당은 집권 가능성이 낮은 만큼 열렬 강경 지지층을 향한 무책임의 정치를 행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라면 대안 정치세력으로 집권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신중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아무튼 이제 그동안 누려온 권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권력을 행사했다면 그에 합당한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의 의미일 것이다. 일차적 평가 대상이 대통령과 여당이라고 해도, 지난 2년의 정치를 보면 평가받아야 할 권력이 꼭 대통령과 여당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야당 역시 그간 누린 막강한 권력 행사에 대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이번 총선이 정권 심판 대 정권 지원과 같은 단순한 이분 구도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여야 둘 가운데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지 아니면 둘 다 책임지라고 할지, 그런 평가가 선거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설날 휴가 기간 중 제3당이 규합되었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인적 구성이라고 해도, 제각기 차지한 권력을 휘두르며 그간 힘겨루기와 쌈박질만 해 온 두 거대 정당에게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켜볼 만한 대안이 부상한 셈이다. 명절 술상에서의 정치 이야기는, 그래서 말도 많아지고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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