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지휘 거장, 오자와를 추억하며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난 6일 도쿄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그가 29년 동안 음악감독을 지냈던 보스턴 심포니 홈페이지에는 “전설적인 지휘자였고, 차세대 음악가에게 열정적인 지도자였다”는 추도문이 올라왔다. 심포니홀의 붉은 간판 ‘BSO’ 중 ‘B’를 끄고 ‘SO(Seiji Ozawa)’만 남기기도 했다. 오자와는 196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처음 지휘한 이후 빈 필과 50년 넘게 협력했다. 2002년 주빈 메타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지휘자로 빈 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고,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으로 8년간 일했다. 빈 필 홈페이지에는 “빈 필에 위대한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며 “오자와의 음악에 대한 겸손함과 사랑스런 상호작용, 카리스마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란 추모글이 올라왔다.
미국과 유럽을 오간 경력이 화려하지만, 오자와의 인생에는 부침이 많았다. 1935년 만주국에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오자와는 일찍이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15세 때 럭비를 하다 손가락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사이토 히데오에게 지휘를 배웠고, 24세의 나이로 프랑스 브장송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거장 샤를 뮌쉬의 눈에 띈다.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 뮌쉬는 오자와를 보스턴으로 이끌었고 거기서 그는 뮌쉬와 몽퇴 같은 20세기의 거장에게 지휘를 배울 수 있었다.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오자와는 카라얀에게 배웠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눈에 띄어 그가 이끌던 뉴욕 필의 부지휘자가 된다. 1962년 샌프란시스코를 지휘하며 북미에 데뷔한 27세 오자와는 거칠 것 없어 보였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NHK심포니와 아시아 순회연주 중 단원들과 갈등을 겪은 것. 정기공연에 혹평이 나오자 단원들은 오자와와 일체의 연주 및 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오자와는 계약 불이행 및 명예훼손으로 맞섰다. 오자와가 NHK심포니를 다시 지휘하기까지는 33년이 걸렸다. 이 일은 오자와에게 ‘세계로 나아가자’는 각성의 계기가 됐다.
오자와에게 한 번은 어느 독일 평론가가 질문했다. “동양인이 모차르트나 브람스, 베토벤의 정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망설이던 오자와는 “석양이 아름다운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이듯 음악은 인류 모두의 것입니다”라고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오자와는 이를 악물고 총보와 씨름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날 때마다 그는 늘 안경을 끼고 총보를 펼치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고, 오자와는 리허설에서 자신의 배를 ‘탁탁’ 두드리며 설명하곤 했다. “여러분, 음악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네.” ‘내면의 기(氣)’를 강조하는 지휘자는 최고의 본고장 오케스트라들에 동양의 미덕과 유산을 남겼다.
예전에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봤던 오자와 지휘 빈 필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겨울날의 몽상’을 잊을 수 없다. 그토록 아름답고 섬세하게 음악이 내려앉는 연주는 듣지 못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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