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혀에서 시작해 폭죽처럼 터지는 글
보통 독서는 ‘눈’에서 시작한다. 눈으로 글자를 읽은 후 ‘머리’로 옮겨가 그 책을 소화시키면서 정말 좋으면 ‘심장’까지 감동을 실어 나른다. 눈에서 끝나버리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고, 머리에서만 소화되는 책도 상당수지만, 심장까지 도착한 책이라야 읽는 보람을 안겨준다. 그런데 뜻밖에 ‘혀’에서 시작되는 독서도 있다. 눈으로 읽었으되 강렬한 맛부터 보게 되는 것. 영국 비평가 마크 피셔(1968∼2017)의 책들은 혀에 닿자마자 머리와 심장에서 동시에 터지는 폭죽같은 같은 환희를 안겨주었다.
처음 접한 피셔의 책은 유작이 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이었다. ‘공포’라는 정서를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으로 나누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고, 책과 영화와 음반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파이프를 연결하고 확장해나가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까지 통과하자 그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책은 ‘문화연구’라는 활력이 떨어지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피셔의 글을 읽는 재미는 빼어난 분석을 보는 재미, 문화와 철학을 횡단하면서 우리 세계가 어떤 토대에서 만들어져 흘러가는지, 그 미묘한 변화를 지진계의 그래프처럼 적확하면서도 흥미롭게 보여주는데 있다.
『K-펑크』는 저자의 대부분의 글이 실려 있던 블로그를 집대성해 그의 사후에 출간한 책으로, 현재 1권이 나와 있다. 블로그 글 모음이기에 다분히 파편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가 ‘지루한 디스토피아’에 빠져들어 사람들을 순응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식이 굵직하게 와 닿는다.
이번에도 ‘책을 부르는 책’이다. 이 열정과 염세에 감응하다보면 여기에 거론된 책과 영화를 당장 찾아보고 싶다는 충동에 근질근질해진다. ‘근간’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단어였나. 책 날개를 펼쳐보니 4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유작부터 읽었음에도 나에게 그는 죽은 작가가 아니라 현재 번역 중이며 열렬히 신간을 기다리는 독자를 갖춘, 여전히 살아있는 작가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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