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맞고, 얼굴에 공 맞고” 막고 또 막은 조현우
“우승 트로피를 들고 팬들의 축하를 받으며 귀국하는 게 꿈이었는데….”
아시안컵 축구 대회를 마치고 지난 8일 귀국한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33·울산HD)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조현우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요르단에 0-2로 져 결승 문턱에서 탈락했다. 당초 한국의 목표는 우승이었다. 귀국 이튿날인 9일 만난 조현우는 “마음이 아주 무겁다. 선수들이 고생해서 정성껏 준비한 대회인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면서도 “동료들과 ‘앞으로 치러야 할 경기 많기 때문에 다시 잘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주장인 (손)흥민이도 ‘모두 희생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고 전했다.
일부 팬들은 지난 8일 밤 귀국한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골키퍼 조현우만큼은 예외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당시 신들린 선방으로 2-0 승리를 이끌었던 조현우는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철벽 방어를 펼치며 위기 때마다 클린스만호를 구해냈다.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연장까지 1-1, 승부차기 4-2승)은 조현우가 기량을 맘껏 발휘한 무대였다. 그는 승부차기에서 사우디 3번 키커 사미 알 나지, 4번 키커 압둘라흐만 가리브의 킥을 잇달아 막아내며 한국에 8강행 티켓을 안겼다. ‘빛현우’ ‘거미손’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경기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조현우는 “3번 키커는 슈팅 성향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손쉽게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4번은 정보가 전혀 없는 선수였다. 왼쪽으로 뛰면 막을 수 있다는 ‘동물적 감각’을 믿고 뛰었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골문을 지켰다”고 덧붙였다.
우승 후보 호주와의 8강전(연장 2-1승)에서도 수문장 조현우의 활약은 빛났다. 그는 호주의 결정적 슈팅을 수차례 막아내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조현우는 “사우디와의 16강전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해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손상되는 부상을 당했다. 호주와의 8강전을 앞두고 동료들이 모르게 통증 부위에 진통제를 맞고 출전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며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막고 (진통제) 맞고, 또 막았다”며 빙긋이 웃었다.
그는 전쟁 같았던 요르단과의 4강전의 뒷이야기도 전했다. 조현우는 전반전에 요르단 공격수의 강력한 슈팅을 안면으로 막아낸 뒤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조현우는 “슈팅에 오른쪽 눈 부위를 맞았다.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였다. 그런데 실명할까봐 두렵기보단 ‘실점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뿐이었다. 이 골을 막아냈으니 내 투혼을 보고 동료들이 골을 넣어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현우는 당초 ‘넘버 투’ 골키퍼였다. 주전 골키퍼는 김승규(알샤밥)였다. 조현우의 선방 능력은 아시아 정상급이지만, 빌드업을 중시하는 클린스만 감독은 발기술이 좋은 김승규를 중용했다. 그러나 조별리그 1라운드 후 김승규가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중도 하차하면서 조현우가 선발로 나섰다.
예상하지 못한 출전 기회를 얻은 조현우는 든든하게 골문을 지켰다. 조현우는 “아내와 가족의 응원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16강, 8강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내가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줘 아내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팬들은 “넘버 투 조현우의 재발견”이라며 기뻐했다. 조현우는 “언제 기회가 주어져도 완벽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준비를 잘한 덕분에 막을 수 있었다. 결과가 아쉽지만, 빨리 받아들이고 다음 A매치와 새로운 (K리그) 시즌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 조현우
「 ◦ 생년월일 1991년 9월 25일
◦ 체격 1m89㎝, 75㎏
◦ 소속 울산 HD FC
◦ A매치 29경기 34실점
◦ 주요 경력 2018·22 월드컵, 2019·23 아시안컵, 2018 아시안게임 금
◦ 특기 수퍼세이브
◦ 별명 빛현우, 거미손
」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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