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육아하면 프리패스 재채용…경단녀 걱정 마세요"[K인구전략]

부애리 2024. 2. 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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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해결하려면
여성 커리어 유지 문제 주목해야
눈치 안보는 육아휴직
여성리더 프로그램 등

편집자주 - 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국내 합계출산율 0.78명. 저출산 문제 극복은 국가적 이슈가 됐다. 아시아경제는 연중기획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를 진행하면서 기업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놓고 다양한 기업 사례를 취재했다. 그 중 특히 주목한 것이 여성들의 커리어 유지 문제다. 여성 경제 활동이 활발해진 현재 상황에서 '경력단절여성(경단녀)' 우려는 출산을 망설이는 큰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4.6%(2022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활발해졌지만,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은 급격히 낮아진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상장법인 2246개의 성별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 비율은 5.2%에 불과했다. 본지가 매출액 상위 100대 상장사를 기준으로 분석한 ‘양성평등 종합점수’ 데이터에서도 회사 정책 결정권을 가진 여성 사내이사는 전체 대상 법인 중 5곳에 불과했다. (관련기사:"여성은 있지만, 리더는 없다"…女성장 가로막는 경력단절[K인구전략])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 등에 따른 경력단절이 큰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3 여성관리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돌봄 부담이 퇴사에 미치는 영향이 남성보다 여성 관리자에게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관리자의 경우 남성 배우자의 돌봄시간이 1시간 증가할 때마다 본인의 퇴사 가능성이 3% 증가한 반면, 남성 관리자의 경우 여성 배우자의 돌봄시간이 1시간 증가할 때마다 오히려 퇴사 가능성이 6% 줄었다.

이처럼 출산과 육아 등은 여성 커리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이어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믿음은 여성 커리어 유지에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도 숙련된 인재를 계속 묶어두는 '락인효과'를 노릴 수 있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커리어도 육아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5살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퇴사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재채용 퇴직 조건 제도가 생겨서 반가웠어요." 18년 차 직장인 정해신 KB국민은행 차장(41·여)은 지난달 재채용을 조건으로 ‘육아퇴직’을 했다. KB국민은행은 육아휴직 2년을 포함해 5년간의 육아 기간을 보장하는 '재채용 조건부 육아퇴직 제도'를 지난해 마련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 시 3년 후 재채용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별도 채용 과정 없이 다시 KB국민은행에 채용되며, 재채용 시 퇴직 직전 직급으로 복귀한다. (관련기사:"경단녀 걱정 마세요" 육아퇴직시 재채용…난임휴직으로 아이 낳은 사례도[K인구전략])

정씨는 "퇴직 기간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시 원래대로 일을 할 수 있어서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은행은 인재 확보에 도움이 되는 이같은 제도를 통해 인재 채용 및 숙련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신입 행원을 뽑아서 이들이 숙련 인재가 되려면 몇 년이나 걸리지만, 재채용 인재들은 했던 일을 잠시 쉰 것이기 때문에 복귀했을 때 훨씬 적응 속도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육아휴직 후 100% 복귀 보장"

육아휴직을 다녀온 여성들을 환영하는 사내 분위기도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롯데호텔 헤드매니저 김민영씨(34·여)는 육아휴직 후 2021년 12월 복귀했다. 2019년 6월부터 산전휴가 3개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2년 등 총 2년6개월을 쓴 후였다. 휴직 전엔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다 전략기획팀을 지원해 이동했다. 김씨는 "복귀하는 직원을 웰컴하는 사내 분위기가 적응에 큰 힘이 됐다"며 "’육아휴직을 2년이나 썼네’와 같은 시선이었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근무자를 채용해 눈치볼 필요 없이 육아휴직을 쓰게 독려하는 회사도 있다. 한국페링제약에서 근무하는 이승원씨(41·여)는 약 1년간 휴직을 사용하기에 앞서 한 달간 대체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했다. 복직할 때는 반대로 대체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아 적응 속도를 높였다. 육아휴직을 떠나게되면 다른 동료들이 업무를 더 하게될까봐 심리적 부채감이 생기지만, 이 같은 제도가 있으면 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에 부담이 없어지면서 선순환 효과가 있다. 이씨는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팀 직원도 1년간 (휴직을) 쓰고 복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임신을 알게 됐을 때 나도 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출산휴가를 다녀온 뒤에는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충만했고, 배려받은 것이 있다보니 좋은 퍼포먼스를 냈다"고 말했다.

'던힐', '글로' 등의 담배 제품으로 알려진 BAT그룹의 한국 지사 BAT로스만스는 출산휴직, 육아휴직 등을 사용하고 난 후 복귀할 때 팀 배정이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로 규정하는 '복귀 100% 보장제'를 택하고 있다. 정주희 인사팀 차장은 "육아휴직 후 복귀할 때 페널티가 없도록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 삶을 위해 휴식을 하고 돌아왔을 때 당연히 그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걸로 인해 전혀 손해가 되면 안 된다는 인식이 회사 내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진미경 신한카드 소비자보호본부 상무.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리더는 男 얘기가 아니다"

여성 리더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역시 중요하다. 신한금융그룹은 금융권 최초로 2018년부터 여성리더 육성프로그램인 '쉬어로즈(SHeroes·신한의 여성 영웅들)'를 출범시켰으며 하나금융그룹도 2021년 차세대 여성리더를 육성하는 '하나웨이브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신한 쉬어로즈는 2022년까지 220명이 수료했는데, 여기에서 여성 임원 및 본부장 20명이 배출됐다. 하나웨이브스도 지난해까지 98명이 수료했으며 이중 7명이 임원 및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관련기사:"금융사 임원, 男 얘기가 아닙니다"[K인구전략])

이 같은 프로그램은 여성들의 네트워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쉬어로즈 2기 출신인 진미경 신한카드 상무는 “대내외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쉬어로즈가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높은 자리에 갈수록 어렵게 느끼는 것은 '인적 네트워크'다. 진 상무는 "자리가 높아질수록 주변에 역량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 둘까 걱정이 컸다"며 "쉬어로즈를 통해서 관계를 맺다 보니 굉장히 많은 인맥이 형성됐고,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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