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좌절-국대 은퇴설까지, '무관의 제왕' 탈출은 언제쯤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 손흥민이 '2023 AFC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소속팀에 복귀했다. 손흥민은 지난 2월 11일(한국시간) 열린 2023-202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4라운드 브라이튼과의 홈경기에 교체로 출전하여 후반 추가시간에 브레넌 존슨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승점 3점을 더한 토트넘은 14승 5무 5패를 기록하며 4위로 올라섰다. 선두 리버풀(16승 6무 2패, 승점 54)과는 7점차이다. 손흥민은 시즌 6호 도움을 추가하며 공격 포인트를 18개(리그 12골)로 늘렸다.
엔조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의 복귀전인 브라이튼전을 벤치에서 시작하게 했다. 아시안컵에서 6경기 전 경기에 출장하며 추가시간을 제외하고도 연장전 2회 포함 총 600분 출전의 강행군을 이어온 손흥민의 체력부담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손흥민은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짧은 시간을 출전하고도 투입되자자마 날카로운 공간 침투와 크로스로 브라이튼의 수비를 흔들며 '게임체인저'다운 존재감을 뽐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이 결정적 순간에 적절한 패스를 해줬다. 그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법한 패스였다"라고 극찬했다. 이어 "손흥민은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다. 그의 국적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리그인 EPL에서 손흥민은 매년 항상 높은 골 기여도로 증명된 선수다. 물론 손흥민이 아시안컵 출전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다른 선수들이 잘해줬지만, 월드클래스 선수를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라며 손흥민의 복귀에 행복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제 손흥민으로서는 아시안컵 강행군과 우승 실패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을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손흥민은 최근 막을 내린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 분전했지만,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2010년 12월 시리아전을 통하여 국가대표에 데뷔한 손흥민은 아시안컵에 총 4번 출전했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를 통하여 아시안컵에서 총 18경기에 출전하여 이영표(16경기)를 제치고 한국인 선수로는 아시안컵 역대 최다경기 출장자가 됐다. 득점은 7골로 이동국(10골)에 이어 한국인 선수 역대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한국축구는 1956-1960년 2연패를 차지한 이후 줄곧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고 이제 무관 기록을 다음 대회까지 '67년째' 이어가게 됐다. 손흥민이 출전한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3위-준우승-8강-4강을 기록했다.
손흥민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할 수 있는 대표적인 메이저대회에는 월드컵과 아시안컵이 있다. 손흥민은 월드컵 본선에 3번 출전했고,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최초로 조별리그 통과에 성공하며 원정 16강진출을 달성했다. 화려한 개인 커리어에 비하여 그동안 대표팀에서의 성과가 아쉽다는 평가를 떨쳐낸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현실적으로 월드컵 우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봤을 때, 아시안컵은 손흥민이 국가대표팀에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유일한 메이저대회였다. 최전성기의 손흥민이 아시안컵에 무려 네 번이나 도전하고도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3년 뒤 다음 대회가 열리는 2027년 사우디 아시안컵이 되면 손흥민의 나이도 어느덧 35세가 된다. 그때까지 손흥민이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거나 계속 태극마크를 달고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손흥민은 지난 아시안컵이 끝난 직후, "제가 앞으로 대표팀을 계속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미래는 어찌될지 모른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전에 없었던 손흥민의 발언을 두고 많은 이들은 '국가대표 은퇴' 가능성을 시사한 게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현재 손흥민은 31세이며 공교롭게도 박지성-구자철-기성용 등 전임 대표팀 주장들이 지금의 손흥민과 비슷한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전례도 있다.
하지만 현재 대표팀에서 손흥민을 대체할 만한 선수는 없다. 미래의 에이스로 꼽히는 이강인이나 김민재-황희찬 등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대표팀에는 손흥민의 존재감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많은 팬들은 손흥민이 2026 북중미월드컵과 2027 사우디 아시안컵까지는 태극마크를 달고 유종의 미를 거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손흥민이 아시안컵 출전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토트넘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토트넘은 지난 1월 28일 맨체스터시티와의 FA컵 4라운드에서 손흥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0-1로 패하며 탈락했다. 토트넘은 올시즌 또다른 컵대회인 잉글랜드 풋볼리그컵(EFL컵)에서도 2라운드에서 풀럼에 승부차기로 석패하며 탈락한 바 있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8위에 그치며 유럽클럽대항전 출전권을 모두 놓쳤다. 올시즌 단기전인 리그컵과 FA컵은 토트넘이 현실적으로 그나마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대회였지만 모두 조기탈락하며 이제 토트넘에 남은 것은 정규리그 뿐이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토트넘의 리그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최근 맨유의 레전드인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영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올시즌 리버풀과 맨시티를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은 반면, 토트넘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짧고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토트넘의 마지막 공식 대회 우승 기록은 손흥민이 입단하기 이전인 2007-2008시즌 리그컵 우승으로 무려 16년 전이다. 손흥민은 토트넘에 입단한 이후 정규리그, 유럽챔피언스리그, 리그컵까지 모두 준우승만 경험했다. 올시즌도 현실적으로 토트넘의 전력을 감안할 때 4위권 안에는 들어도 대성공이라는 평가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소속팀과 대표팀을 통틀어 아직까지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3세 이하 연령대별 대회였던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 유일한 우승 기록이다. 한국축구의 역대 레전드로 꼽히는 차범근-박지성을 능가하는 화려한 개인 커리어에 비하여 손흥민에게 유일하게 옥에 티로 남은 수식어가 '무관의 제왕'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 희망은 있다. 에이스 해리 케인이 무관의 한을 풀기 위하여 독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이후, 전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평가받았던 토트넘은 올시즌 초반 새 주장 손흥민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무패행진을 이어가는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손흥민도 올시즌 벌써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지난 시즌의 부진을 딛고 다시 예전의 기량을 되찾았다. 관리만 잘한다면 아직 몇 년은 더 전성기의 활약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평가다.
최근 토트넘은 손흥민이 아시안컵에서 복귀한 데 이어, 히샬리송이 리그 두 자릿수 골을 터뜨리며 슬럼프를 벗어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여기에 시즌 초반 손흥민과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던 제임스 매디슨도 부상을 털고 돌아오며 드디어 완전체 전력을 다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토트넘이 정규리그 14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손흥민은 이제 리그에만 주력할 수 있게 되어 체력적인 면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손흥민은 올시즌 토트넘의 4위권 진입과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권 획득을 위하여 다시 뛴다. 득점 선두 엘링 홀란(맨시티, 16골)과의 격차는 4골로 득점왕 경쟁도 아직 충분히 해볼 만하다. 손흥민이 아시안컵의 아픔을 딛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화려하게 비상하는 모습을 팬들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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