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인류 안녕 위해…인간안보 테크 붐 [경영전략노트]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2.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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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4에서 배운 AI 기술 ‘만점’ 활용법

국가안보는 알겠는데 인간안보는 뭐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의아해한 용어였다. CES 2024의 최고 키워드는 단연 AI(인공지능)였다. 그리고 주목받은 또 하나의 단어가 ‘인간안보(Human Security)’다. CES는 ‘모두를 위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 for All·HS4A)’를 테마로 내세우며 AI 기술의 지향점을 제시했다.

국가안보만 안보가 아니다?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개인 보호

인간안보는 전통적인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 패러다임을 넘어선다.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이 단순한 군사 위협만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인간안보는 인간을 환경오염, 식량난, 경제 위기,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했다. 국가안보보다 적극적이고 넒은 개념으로, 과거 냉전시대 용어인 국가안보를 좁게 해석하며 인류가 위험을 맞았다는 게 골자다. 한 나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중요하지만 개인 인권, 사회적 안정 등을 지켜야 진정한 세계 평화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용어는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놓은 ‘인간개발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다. UNDP는 인간안보의 핵심 요소로 평화와 안보, 경제 발전과 복지, 인권 존중, 환경 보존, 사회 정의, 민주화, 군축, 법치, 좋은 정치 등을 담았다. 2023년 제78차 유엔총회에서 8번째 인간안보 분야로 ‘첨단기술안보’가 추가돼 ▲식량안보 ▲의료 접근성 ▲경제안보 ▲환경 보호 ▲개인 안전 ▲공동체 안전 ▲정치적 자유 ▲첨단 기술 등으로 정리됐다.

인간안보 개념이 경제계로 파고든 건 CES의 공이기도 하다. CES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 연속 ‘인간안보기술(Human Security Technology)’을 앞세우며 각종 기술 개발과 융합이 결국 인간의 안녕과 번영을 향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해왔다.

2023년 처음 이 개념을 꺼냈을 때만 해도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워낙 생소하고 광범위한 개념이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인간안보 기술이 마땅치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올해는 달랐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인간안보를 위한 기술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CES 2024’에서 핵심 테마로 급부상했다.

인간안보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은 국내 스타트업 ‘미드바르’는 생육 베드에 공기를 주입해 작물을 재배하는 에어팜(Airfarm)을 선보였다. (미드바르 제공)
CES 등장한 다양한 인간안보테크

에너지 효율 높이고 탄소 배출 줄이고

CES 2024에서 선보인 ‘친(親)인류’ 기술은 다채로웠다. 인간안보를 이뤄내기 위한 핵심 영역 중 하나가 에너지다. 최근 몇 년 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렸다. 이런 에너지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을 바탕으로 단단한 수소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SK그룹도 수소연료전지로 달리는 트레인 어드벤처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HD현대와 두산밥캣 등이 모인 제로 사이트에서는 친환경 에너지 밸류체인이 전격 공개됐다.

구체적인 에너지 기술도 다수였다. 프랑스 I-TEN은 작은 크기로 높은 전력 공급이 가능한 친환경 충전형 전고체 배터리 ‘ITX181225’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일본 스타트업 inQs는 태양광뿐 아니라 실내에서 발생하는 조명 빛 등까지 전력으로 변환해주는 ‘SQPV 글래스’로 화제를 모았다.

식량 문제에 대처하는 기술도 각광받는다. 인간안보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은 국내 스타트업 ‘미드바르’는 생육 베드에 공기를 주입해 작물을 재배하는 에어팜(Airfarm)을 선보였다. 실시간으로 공기 중 수분을 물로 변환해 작물이 생산한 수분을 뿌리까지 재순환시키는 솔루션이다. 전통 농업에 비해 물을 99% 줄일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식량 생산이 가능하다.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동 등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조대근 에어로팜 연구소장은 “수자원이 부족한 중동·아프리카는 물론 20년째 가뭄인 미국 네바다주 쪽 현지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스타트업 ‘라이즈가든’은 수경 재배를 기반으로 한 선반형 스마트팜 ‘라이즈로마(Rise Roma)’로 인기를 끌었다. 라이즈로마는 식물 씨앗이 담긴 캡슐을 이용해 토마토·상추 등 12종의 식물을 키울 수 있다.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은 모빌리티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교통·첨단 모빌리티 부문 최고혁신상 수상작은 일본 혼다의 개인형 이동 수단인 ‘모토컴팩토’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전기 모빌리티다. 110V 전원을 이용하면 3.5시간 만에 충전을 완료한다. 제품 무게가 19㎏이 되지 않는 초경량인 데다 접이식으로 휴대할 수 있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사회적 약자 보호용 AI 기술 다수

난청인·시각 장애인 위한 테크 호평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기술도 대거 등장했다. 프랑스 스타트업 ‘이브스’는 청각 장애인이 인터넷에서 자막 없는 동영상을 즐길 수 있는 해법을 내놨다. 음성을 인식해 AI 아바타가 수어로 바꿔서 소통하는 기술이다. 이 AI 아바타는 인간 수화 통역사처럼 풍부한 표정을 짓고, 능숙한 손짓으로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한다. 프랑스 기업 ‘에실로룩소티카’가 선보인 스마트 안경 ‘뉘앙스’는 난청인의 청력 한계 극복을 도와준다. 시끄러운 식당에서 이 안경을 쓰면 순식간에 주변 소음이 줄어들고, 내 앞사람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 AI가 말을 거는 사람 목소리를 재빨리 잡아내 안경다리 끝에 탑재된 스피커로 증폭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보청기 대체 상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루마니아 스타트업 ‘닷루멘’은 시각 장애인이 안내견이나 지팡이 없이 대로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래시스 헤드셋’을 선보였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기기에 도입했다. 카메라 센서가 주변 사물을 파악, 장애물이 없는 안전한 방향으로 이용자의 머리를 미세하게 잡아당긴다. 안내견이 시각 장애인 손을 끌어 길을 안내하듯, 안전한 방향을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 전환해 알려준다.

기계가 인간의 신체 결함을 보완해주거나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강화인간’ 기술도 인간안보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국내 스타트업 ‘만드로’의 로봇 손가락 의수 ‘마크 7D’는 남아 있는 손가락 신경의 작은 신호를 AI가 읽어내 진짜 손가락처럼 움직인다. 무게는 200g에 불과해 하루 종일 착용해도 부담이 적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와 쥐는 힘의 세기 등을 세세하게 설정할 수도 있다.

이 밖에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총기 감지 AI 시스템’도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총기를 소지한 괴한이 학교 입구에 들어오면 AI 총기 감지 보안 카메라 두 대가 빠르게 총기 모양을 감지해 학교 안전 담당자에게 긴급 경고를 보낸다. 또 오디오 AI는 괴한의 총소리를 비롯한 각종 소리로 동선을 실시간 추적해 경찰에 알리고 안내 방송을 내보낸다. 학생들의 원활한 대피와 괴한의 도주를 막는 출입문 개폐 시스템도 AI가 작동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6호 (2024.02.07~2024.02.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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