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기다려야 투명카약 탄다…44만명 찾는 이 동굴 반전매력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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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카약 성지로 변신한 활옥동굴
수명을 다한 것 같은 광산은 문을 닫는 게 당연해 보였다. 7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렸던 광산은 폐허처럼 고요했다. 동양 최대를 자랑하던 육중한 ‘권양기(광물을 끌어올리는 기계)’는 멈추는 날이 많았다. 땅을 밟으면 하얗게 묻어나는 돌멩이 가루. 동굴에 베인 기름 냄새만이 ‘여기가 위세 높던 그 활석 광산이었나’라고 짐작게 했다.
1919년 문을 연 이 광산은 한때 1000명이 넘는 광부가 활석을 캤다. 영광은 70~80년대 값싼 중국산 활석이 잠식하면서 막을 내렸다. 직원은 120명으로 쪼그라들고, ‘아시아 최대 활석 광산’ ‘수출 효자’란 명성도 사라졌다. 1999년 충북 충주시 목벌동 일신동양활석광산을 인수한 이영덕(76) 영우자원 회장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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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개발→중국산 수입에 쇠락
백미는 ‘동굴 카약’이다. 천연 암반수로 채운 동굴 호수를 투명 카약을 타고 탐험할 수 있다. 국내 유일의 활석 광산을 모르는 낯선 이들이 충주호 굽잇길을 돌아 제 발로 동굴을 찾아올 줄이야. 애물단지 신세였던 광산의 변신이 놀랍다.
이곳에서 채굴활동은 2018년 끝났다. 이후 이영덕 회장 주도로 전체 갱도 57㎞ 중 2.3㎞ 구간을 정비해 2019년부터 관광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활석은 ‘곱돌’로 알려진 하얀색 광물이다. 표면 촉감이 비누처럼 부드럽고 매끄럽다. 그래서 용암동굴이나 석회동굴과 달리 내부가 밝은 대리석을 두른 것처럼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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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 카약 되겠어?” 핫플레이스 반전
가장 인기를 끄는 건 동굴 끝에 있는 카약이다. 수심 50㎝ 정도 물 위를, 밑이 훤히 보이는 카약을 타고 7~8분 구경할 수 있다. 노를 젓다 보면 철갑상어 등 물고기가 따라오고, 벽에 붙어 암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으레 갈 수 없다고만 여겼던 동굴 내부 곳곳을, 이리저리 균형을 잡아가며 감상하는 맛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말엔 1시간 이상 대기해야 겨우 탈 수 있다.
활옥동굴은 2018년 외부에 있는 카페 이용객에게 무료로 시범 개방했다. 방문객은 2019년 2만4000명,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20년 18만명, 2022년 4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44만명이 다녀갔다. 관람료를 포함한 연간 매출은 60억원 정도다. 활옥동굴 한 관계자는 “동굴 카약은 직원들조차도 ‘이게 되겠어’라고 반신반의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을 쳤다”고 말했다.
활석 광산의 화려한 변신은 1할의 ‘꿈’에 9할의 ‘인내심’이 보태진 결과물라고 한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쓸모없는 광산’을 핫플레이스로 만든 비결을 지난 6일 이영덕 회장에게 물어봤다.
Q : 광산을 관광지로 개발
A : “원래는 정원을 만들려고 광산을 샀다. 부친이 과거 경기도 광주시에서 대형 소나무나 향나무·단풍나무를 기르는 농원을 운영했다. 학창시절 전정 작업 등을 도우면서 원예에 관심이 생겼고, 국제적인 정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1973년 일본종합 상사 서울지점에 입사해 10여년 간 화학제품 수출입을 담당했다. 85년 화공 약품 제조무역업을 하는 영우켐텍을 창업했다.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캐나다·유럽·일본 등에 있는 유명 가든을 견학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Q : 충주 활석 광산은 전에도 알고 있었나.
A : “1998년 외환위기 사태 때 자금에 여유가 생기면서 전국에 5만~10만평 정도 되는 정원 후보지를 찾아다녔다. 때마침 충주에서 활석을 채굴하던 일신동양활석이 경영난으로 1993년부터 법정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 99년 약 10억원을 주고 광산을 인수했다.”
A : “당초 광산을 매입 할 때는 동굴 개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광산 주변 계곡을 메꾸면 산·동굴·호수가 어우러진 10만평 규모의 세계적인 정원이 될 것 같았다. 계곡을 매립하려면 돌이 필요했다. 광산에서 일정 기간만 채광하고 계곡에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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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석 갖고 놀던 목벌동 '곱돌마을'
목벌동 광산 인근은 “활석이 생산되는 마을”이라는 ‘곱돌마을’로 불렸다. 분필이 귀하던 시절, 마을 아이들은 활석 광산에서 얻은 돌멩이가 뭔지도 모르고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이 활석 광산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해방 이후엔 귀속재산으로 민간기업에 매각되면서 활석 생산을 이어갔다.
활석은 주요 수출 광물로 성장을 거듭했다. 1945년 2500t에 불과했던 활석 생산량은 1979년 23만6000여 t으로 94배 늘었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활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3년 5만3000t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충주 활석광산을 운영하던 일신동양활석이 경영난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Q : 활옥동굴을 광산을 인수한 지 20년 뒤에나 일반에 개방했다.
A : “광산 개발을 위해선 소유권 완전 이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광산 용지를 매입한 뒤에도 광업권과 갱구 안에 있던 채광 설비 양도담보권을 소유한 한국광물자원공사(현 광해관리단)와 협의가 수년간 답보상태였다. 정원조성 계획도 지연됐다. 다행히 모 회사인 영우켐텍이 충주 활석을 사들여 판 덕분에 채굴은 어느 정도 유지했다.”
Q : 정원 조성계획을 동굴 관광자원화로 바꾼 이유는.
A : “광산을 여러 차례 둘러보며 동굴 자체로도 관광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동굴 안쪽이 흰색이라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동굴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활석과 옥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돼 건강치료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을 알게 돼 관광·레저·힐링을 주제로 한 동굴 개발을 생각하게 됐다. 2010년 자본금 100억원으로 광물자원공사와 합작법인인 ‘영우자원’을 설립했다. 활석 생산시설을 늘리고, 동시에 관광사업을 위한 관람용 갱도 확장 작업을 병행했다.”
Q : 투명 카약이 이색적이다.
A : “최근 관광 추세가 체험이다 보니 카약 운영을 밀어붙였다. 앞으로 법적 검토를 거쳐 지하 2~3층에 대규모 물놀이 시설도 준비 중이다. 장애인이나 노인층이 걷기 쉽도록 경사를 낮추고 길도 고르게 다졌다. 유아용 유모차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초기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최근엔 단체 관광객이 많다.”
Q : 동굴 안에 와인시음장과 수경재배 시설도 눈에 띈다.
A : “활옥동굴은 사계절 13~15도가 유지 돼 와인 보관과 음지 식물 재배에 최적이다. 고추냉이는 100g당 2만5000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식물인데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일본에서 고추냉이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어서, 동굴 스마트팜에서 고추냉이를 길러 생산하고 있다. 향후 지하 2층에서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Q : 향후 활옥동굴 추가 개발 계획은.
A : “국내에는 동굴법이 없어서 각종 허가에 제약이 많이 따른다. 장기적으로 지하 2·3층에 대형 스마트 팜, 보트장, 동굴 캠핑장을 계획하고 있다. 권양기를 이용해 관광객이 지하 100m를 내려가 보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500마력 권양기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것이다. 설치된 지 50년이 넘어 근대화 유산 등록을 추진하겠다.”
충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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