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치기' 피하다 사고 낸 운전기사, 재판서 '무죄'

뒤차와 부딪힌 후 도주한 혐의
약식기소 후 정식 재판 청구 끝에 무죄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차선을 급하게 변경하며 끼어드는 이른바 '칼치기'를 피하려다 뒤따라오던 차와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운전기사가 정식 재판을 청구해 혐의를 벗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이환기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A씨(44)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운전기사인 A씨는 2022년 12월22일 오후 10시50분께 K9 승용차를 몰고 서울 중구 편도 3차로 도로에서 남산1호터널 방면 2차로를 따라 시속 약 55㎞로 달리고 있었다. 당시 그는 회사 대표이사를 귀가시키던 길이었다.

사고는 1차로를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차선을 바꿔 끼어들어 발생했다. A씨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핸들을 우측으로 돌렸는데 마침 뒤편에서 3차로를 달리던 또 다른 택시의 왼쪽 앞 범퍼를 A씨가 몰던 K9 승용차 오른쪽 뒤 범퍼로 들이받았다는 것이 조사 결과였다. 검찰은 A씨가 뒤편 택시에 수리비 390여만원의 손괴 사고를 내고도 즉시 정차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이탈했다고 판단해 약식 기소했다.

A씨는 검찰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A씨가 몰던 차량과 3차로 택시가 충돌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가 3차로 택시의 사고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또 칼치기 당시 A씨가 핸들을 돌리지 않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앞 택시와 사고를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A씨는 가까스로 사고를 피했으나, 3차로 택시는 당시 상황에 놀라 다른 이유로 앞 범퍼가 손상된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실제로 K9 차량에는 사고로 파손된 흔적이 없었고, 도로교통공단 분석에서도 당시 두 차량이 충돌했다는 점을 단정할 만한 흔들림이 확인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당시 대표이사를 태우고 운전했다는 점에서 뺑소니할 동기나 이유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 후 미조치는 사람의 부상이나 물건의 손괴가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처벌하는 범죄"라며 "A씨가 미필적이나마 사고를 인식했는데도 조치 없이 이탈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거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한편 '칼치기'에 해당하는 난폭 운전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난폭 앞지르기나 끼어들기를 할 경우 도로교통법 제21조, 제22조 위반으로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금형에 처할 수 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