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믿었을 뿐인데'... 고국 못 돌아가는 이 사람

최정규 2024. 2. 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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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3400만원 못 받은 이주노동자 A씨의 사연... 9년째 한국 머물며 정부와 싸우다

[최정규 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가족들과 모여 오손도손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올해도 쓸쓸하게 명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시민단체가 경기도 안산에서 운영하는 쉼터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든다. 이주노동자 A씨도 그중 하나다.
 
 시민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등에서 운영하는 쉼터에는 임금체불 등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쌀과 명절음식을 후원받아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 지구인의 정류장
9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

한국 정부가 직접 알선한 농장에서 일하다가 3000만 원이 넘는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1993년생 이주노동자 A씨는 9년째 한국에 있다.  

A씨는 2015년 9월, 22세의 나이로 한국에 왔다. 한국정부가 16개국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취업비자 프로그램인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입국했다. 그는 한국정부의 소개로 경기도 이천의 한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해 2020년 3월까지 4년 8개월 동안 성실히 일했다.

동료 노동자도 없이 혼자 농장주 지시에 따라 일해야 했고, 도심 지역과 떨어져 있는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야 했다. 임금도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4년 8개월을 버텼다. 돈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비자프로그램은 2020년 3월 끝났지만 A씨는 아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A씨가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2020년 4월, 고용노동부는 허거지겁 임금체불 조사를 진행했고 A씨가 못 받은 임금이 3400만 원이라는 확인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A씨의 권리구제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한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관련 기사 : 임금 못 받고 빈손 귀국 이주노동자, 뉴스 나오고 벌어진 기막힌 일 https://omn.kr/1p18z , 정부 알선 사업장서 3년치 임금체불... 이제 와서 나몰라라? https://omn.kr/1q719 ). 

한국정부를 믿었을 뿐인데...

"땅을 팔아 밀린 임금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한 농장주의 땅은 이미 경매로 넘어갔고, 농장주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A씨가 농장주로부터 밀린 임금을 지급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 받은 임금을 포기하고 갈 수 없었던 그는 2023년 2월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정부가 알선했으니 한국정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A씨 언론인터뷰 기사, 2023년 2월 16일 MBC 보도 [집중취재M]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사장님들‥달아나거나 '모르쇠'
ⓒ MBC
 
16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취업비자 프로그램인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고용법은 아래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외국인근로자의 고용관리)  
④ 외국인근로자의 적절한 고용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3조(외국인근로자의 고용관리) ② 고용노동부장관은 법 제17조제4항에 따라 외국인근로자의 적절한 고용관리 등을 하기 위해 매년 1회 이상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한 지도ㆍ점검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선정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 외국인근로자의 근로조건, 산업안전보건조치 등의 이행실태, 그 밖에 관계 법령의 준수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지도ㆍ점검을 해야 한다

매년 1회 이상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한 지도점검 규정까지 두고 있는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정부가 알선한 사업장에서 임금체불 피해는 당하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정부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과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체불임금액은 2018년 972억 원에서 2019년 1217억 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까지 매년 1200억 원대에 머물러 있다.   

사업장지도점검은 5%뿐... 상황파악 못한 건 확률의 문제?

고용노동부의 지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임금체불 피해를 당했기에 한국정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A씨가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한국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며 아래와 같이 변명했다.
 
한국 정부 산하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2015년도 하반기에 원고가 근로를 제공했던 농축산업종 사업장 중 32개소를 점검하였고, 2016년도에는 94개소, 2017년도에는 81개소, 2018년도에는 115개소, 2019년도에는 122개소를 각 점검하였습니다. 

한편 2023. 10.말경을 기준으로 성남지청 관내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3,449개소, 외국인근로자 수는 14,126명에 이르는바, 성남지청이 매년 모든 사업장을 지도,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로 인하여 성남지청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작위를 대상으로 선정하여 지도, 점검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위의 수치가 보여주듯 성남지청 관내에서 지도점검을 받는 농춘산업 종 사업장의 숫자는 관내 전체 외국인근로자 고용사업장 중 매년 5%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상 성남지청이 2016. 7.부터 2020. 3.경까지 지도, 점검을 하면서 원고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은 현실적인, 확률적인 문제였고, 피고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 피고 대한민국이 제출한 2023년 11월 21일 자 준비서면에서 발췌

1년에 1회 이상 전 사업장에 대한 조사는커녕 5%도 안 되는 사업장에 대한 지도점검, 그 대상을 선정하는 것도 그저 무작위로 정해지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지도점검의 민낯은 이 소송에서 철저히 드러났다. 한국 정부 알선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임금체불 등 인권침해를 피할 수 있는 건 '필연'이 아니라 '우연'에 맡겨져 있다는 걸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한국정부는 올해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를 16만5000명으로 늘렸다. 이주노동자 A씨와 같은 인권침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외국인고용법의 취지대로 1년에 1회 이상 고용허가 사업장 전체에 대한 지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인권침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그저 '확률의 문제'라는 책임회피식 태도로 일관한다면 우리나라에 일하러 들어 올 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정규씨는 현직 변호사이며 A씨에 대한 법률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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