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파업’ 전운 고조…‘의대 증원’ 4년 전 실패한 이유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발표에 반발한 의료계가 집단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지난 2020년 정부가 추진한 동일한 정책이 의료 서비스 이용 당사자인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공론화 과정 부족 등으로 좌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정책분석평가학회보에 실린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입안의 실패 요인’ 제하의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2020년 7월 당시 정부는 당정 협의를 거쳐 2022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 늘리고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계획이었지만,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로 구성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를 주축으로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휴진율이 60%에 달하자 정부는 수도권을 시작으로 전국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전협은 회원들에게 휴대전화를 끄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라며 ‘블랙아웃’(Blackout) 행동 지침으로 강하게 맞섰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 주도로 의대생도 수업과 실습을 거부하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힘을 보탰다. 의대생 대다수가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는 바람에 시험이 한차례 연기됐다. 이마저도 거부한 의대생을 구제하기 위해 의료법 시행령까지 개정하며 시험 기회를 추가로 부여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고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철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이후 의료계와 재논의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의대 증원 정책은 없던 일이 됐다.
신 교수는 “당시 의사의 집단행동은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상황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공적 가치를 알리고 여론을 결집하는 데 실패해 의료계의 저항에 정책을 철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봤다.
신 교수는 또 “의료계와의 협상 중반부터 의협보다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회원과 소통하는 전공의와 의대생 단체가 전면에 등장해 협상 방향을 바꾸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고 짚었다.
그는 “정부는 사안에 따라 의협, 대전협, 의대협 등 의료계 내부의 다양한 이익집단과의 협의하면서 정책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며 “의료 서비스 이용자인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소통 구조가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해 여론을 결집해 알리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의료 공공성 확립을 위한 장기적 계획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취약한 공공·필수·지역의료 분야 의료 인력 양성과 관리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의료계는 이번 설 연휴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휴업 등 집단행동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전협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온라인 임시총회를 열고 집단행동 여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정부는 일찌감치 엄정 대응 방침을 정하고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가동하며 대응에 나섰다. ‘강대강’ 대치로 치닫는 분위기다.
일반 개원의뿐 아니라 대형병원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의 집단휴업이나 연가 투쟁, 집단 사직서 제출 같은 행동에 나설 경우 의료 현장의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협은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집단행동을 준비할 계획이다. 의협은 설 연휴 전인 지난 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전환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가 싫증 난 개 주인처럼 목줄을 내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표현을 써가며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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