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만취자 토사물이 더 쉽다"…'주취센터' 가장 힘든 일 [르포]
지난 2일 오후 10시30분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주취해소센터. 이곳은 부산시와 부산시의료원, 경찰ㆍ소방이 함께 운영하는 전국 유일의 주취 해소 시설로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위치는 부산시의료원 응급실 바로 앞이다.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되는 이곳엔 인사불성으로 만취한 이들 가운데 인적사항ㆍ주거지를 확인할 수 없거나, 가족에게 연락되지 않는 이들이 이송된다. ‘만취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일선 경찰ㆍ소방관 등이 먼저 현장에 출동하고, 필요하면 센터에 이송을 결정하는 구조다.
“바퀴 달린 침대, 급할 땐 응급실로 뜁니다”
23평(76㎡) 면적의 센터에선 경찰 6명과 소방관 3명이 세 팀(한 팀당 경찰관 2명, 소방관 1명)으로 나눠 교대로 근무한다. 오전 9시부터 24시간 근무한 뒤 이틀은 쉰다. 이날은 최광현 경위와 박홍찬 경장, 장종철 소방교 등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센터 개소 때부터 이곳에 근무했다는 최 경위는 이동식 침대 3개와 남ㆍ여 화장실, 직원 업무 공간 등이 갖춰진 내부를 안내하며 “침대에서 쉬던 사람이 몸이 안 좋아지면 곧장 (부산시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바퀴가 달린 이동식 침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금’인데 센터는 안도했다, 왜?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보통 금ㆍ토요일에 술에 취한 보호 대상자가 센터에 가장 많이 몰린다. 취재진이 2일 밤 센터에 방문한 것도 이날이 금요일이었던 데다, 자정 무렵부터 호주와의 아시안컵 8강전이 예정돼 이송자가 많을 거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센터 전화는 새벽이 깊도록 잠잠했다. 최 경위는 “오늘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경기가 있는 날엔 오히려 이송이 없다. 경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술도 자제하는 거로 짐작한다”라며 웃었다.
근무 과정에서 어려움을 묻자 그는 “만취한 분들이 사무실이나 화장실에 토사물을 치우는 건 오히려 쉽다. 일선 근무 때도 자주 있는 일”이라며 “다만 술이 제대로 안 깬 분들이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울 땐 정말 난감하다. 범죄자가 아니니 붙잡아둘 근거가 없는데, 그냥 보내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사람을 설득하는 데 이골이 났지만, 술에서 완전히 깬 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갈 땐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이날까지 센터를 운영한 298일 동안 시민 439명(남성 308, 여성 131)이 보호 조처됐다. 하루 평균 방문객은 1.5명, 이들이 센터에 머무른 건 평균 4.7시간이다.
센터 왔다가 발작… 22명은 병원행
센터 근무자들은 이송자가 휴식을 취하던 중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일 때도 진땀을 쏟는다. 지난해 8월엔 40대 여성 A씨가 센터로 이송됐다가 응급입원 조처됐다. 만취한 채 식당 주차장에 쓰러진 채로 발견된 A씨는 센터에 도착했을 때 혈압과 맥박 등 정상이었지만 갑자기 헛소리하며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가족과 통화한 센터 측은 A씨의 정신병 이력을 파악하고 부산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논의한 뒤 응급입원시켰다.
취재진이 센터에 방문한 이 날도 20대 여성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만취해 이날 오전 7시40분쯤 센터로 이송된 여성이다. 여성의 상태를 살핀 장 소방교는 뒤통수 쪽에서 혹 같은 부종을 발견했다. 술 취한 채 넘어진 상처라는 걸 파악한 그는 머리 안쪽에 이상이 생겼을지 확인하는 게 좋겠다며 병원 이송을 결정했다. 센터 운영 기간 모두 22명이 이처럼 병원으로 옮겨졌다.
“시민ㆍ경찰 모두 보호 위한 것” 타지서도 벤치마킹
센터 운영에 드는 전기ㆍ수도요금은 부산시의료원 측이 감당한다. 경찰ㆍ소방관 등 인건비를 제외하면 연간 센터 유지 예산은 600만원 수준이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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