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 쉬고, 수요일부터 출근"…사장님 나서자, 이직 멈췄다[K인구전략]
“나도 워킹맘”…가족친화기업 만든 대표들
가족친화경영이 비용?…“길게 보면 이득”
편집자주 - 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사장님이 달라졌다. 국가적 난제인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비용으로 치부하던 가족친화제도를 대폭 도입하고, 직원들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이나 여성 비율이 높은 기업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직원이 채 100명을 넘지 않는 중소기업이나 남초 회사에서도 최고경영자(CEO)가 일·가정 양립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나서게 된 건 단순히 직원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가족친화적인 문화가 인사와 매출 등 경영에도 이득이 된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국가도 못한 ‘일·가정 양립’…기업이 나섰다
아시아경제가 올해부터 시작한 연중기획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에는 저출산 문제를 일선에서 해결하려 노력한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취재 과정에서 CEO의 의지가 얼마나 많은 걸 바꿀 수 있는지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없던 제도를 만들고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CEO가 의지를 갖고 앞장선 기업은 결국 그 과정을 극복해 제도를 체화해내고야 마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확인했다. 사회 전반에 일·가정 양립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선구적으로 실시한 가족친화제도는 사내에서 큰 반향을 끌어냈다.
한국페링제약이 대표적이다. 한국페링제약에서는 1년 이상 근속한 직원의 경우 임신부터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가족 구성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난임 치료와 입양을 포함해 상담까지 가능하다. 특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26주까지 보장한다. 지난해 내근직원 중에서 첫 사용자가 나왔는데, 대표가 직접 제도를 이용해보라고 권유했다. (관련기사: 글로벌 제약사 韓 대표 일갈 “저출생 문제 해결 기업·정부 함께 나서야”)
제니스 두싸스 한국페링제약 대표는 “예전에도 출산 휴가에서 복귀한 여성 직원에게 월요일이 아닌 수, 목요일에 출근을 시작하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며 “며칠 동안 새로운 돌봄 루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비록 본인은 출산 경험이 없지만 “출산한 직원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 매우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친화경영에 적극적인 기업인은 중소·남초기업에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중소 건설사 미래도시건설은 전체 임직원 225명 중 여성이 1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형용 대표가 직접 일·가정 양립을 뿌리내리기 위해 출산보조금을 신설하는 등 사내 제도와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가족친화인증도 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대표는 “남성도 육아하는 시대이지 않나”며 “집에 있는 둘째 아이는 아직 8살이 안 됐다. 육아에 관심을 가지던 와중에 회사에서도 문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도 워킹맘이었다”…가족친화기업 만든 대표
핀다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이 30분~1시간가량 자리를 비우는 게 일상일 정도로 육아친화적인 문화가 조성돼있다. 아이와 관련된 일로 업무를 멈추는 것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선진적인 사내 문화가 조성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혜민 공동대표의 의지가 있다. 이 대표는 창업 때부터 회사 직원들이 육아에서만큼은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를 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관련기사: "워킹맘·대디 천국인 직장, 생산성에 오히려 좋아")
이 대표는 “내가 창업했을 당시 아이가 세 살인 워킹맘이었다”며 “이런 상황을 경험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 직원들이 눈치를 보고 마음 졸이는 경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이어 이 대표는 자신도 “아이 생일이나 발달검사처럼 반드시 엄마와 함께해야 하는 일정은 미리 스케줄에 기록하고, 반반차나 반차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육아용품 제조업체 코니바이에린(코니)의 경영자인 임이랑 대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임 대표는 창업 때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었다. 그는 직원들이 일과 육아를 충분히 병행할 수 있도록 회사를 꾸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육아와 관련된 직원들의 고민이 접수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빠르게 제도를 바꾸는 것도 임 대표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임 대표를 포함해 일부 직원들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배려시간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핵심 근무시간(한국시간 기준 오전 10시~오후 5시)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있다면 학기 초 하루 최대 2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재택근무 중 육아로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돌봄서비스를 지원비용 월 15만원을 새롭게 지원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겨울방학땐 애 데리고 출근하죠"…사무실에 교실 차린 회사)
가족친화경영이 비용?…”장기적으로는 이득”
기업인들은 가족친화제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에도 큰 이득이라고 평가했다. 레고코리아는 육아휴직과 별개로 가족 구성원 돌봄이 필요할 때 4주간 급여 100%를 지급하는 ‘가족돌봄휴가’ 제도까지 운영한다. 단기적으로 인력 손실이 발생하고 회사가 지출하는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길게 보면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도입했다. (관련기사: "월급 100%, 상여금도 똑같이"…출산휴가 두달 쓴 '없던 아빠')
정희영 레고코리아 대표는 “기업 자체도 사람이 모여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간 신뢰를 바탕으로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면서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회사의 비용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회사의 성공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모션의 김성철 대표 역시 결혼·육아 정책이 단순 복지로 그치지 않고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됐다고 봤다. 직원이 100명을 채 넘기지 않고 80%가 남성 직원이지만 과감하게 유연 근로를 늘리고 육아휴직 동료 응원 수당을 도입했다. 이후 생산성이 떨어질 거라는 통상의 우려와 달리 매출이 매해 두배씩 늘었다. (관련기사: 동료에 수백만원 보너스…"육아휴직 더 팍팍 써라" 응원)
김 대표는 “결혼이나 육아로 눈치를 보지 않을 때 근로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근속에도 영향을 끼친다”면서 “IT 인력을 붙잡아두는 게 중요했는데 이직이 잦은 개발직군의 경우 2019년 창사 이래 퇴직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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