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도 '반수 맛집' 됐다…의대증원이 부른 씁쓸한 대학 풍경

이후연 2024. 2. 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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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모습. 뉴스1

입학식도 안 했는데 휴학 가능한지 물어보는 전화가 더 많아요. 교직원 사이에서 1학년 교양 과목으로 ‘의대입시반’을 개설하자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에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7일 서울의 한 주요 사립대 학생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선 ‘장학금 많이 주는 대학’, ‘평판이 좋은 대학’ 만큼이나 ‘반수하기 좋은 대학’이 대학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주요 요소로 꼽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반수하기 좋은 대학·반수 팁 공유


대학 캠퍼스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이른바 ‘반수생’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에 일단 등록하고 휴학을 하거나 최저 학점을 신청한 채 대입에 재도전하는 것이다. 수능 결과가 좋지 않으면 등록했던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모험을 해볼 수 있다. 수험생 커뮤니티에선 반수하기 좋은 대학, 신입생 반수 전략 등의 각종 팁이 공유되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 주요 10개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신입생 중 자퇴·미등록 등으로 중도탈락한 신입생은 2022년 기준 3537명으로, 전체 신입생 중 9.5%에 달했다. 최근 3년간 10개 대학 중도탈락률은 2020년 8.1%(2979명), 2021년 8.2%(3062명)로 증가하는 추세다. 2023년 신입생 중도포기율은 올해 8월 공개된다.


대학 ‘휴학금지’ 내걸어도 “최소이수 학점만 수강”


신입생 중도탈락률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1학년 휴학을 학칙으로 금지하는 대학들도 있다. 국민대·서울시립대·세종대·숭실대·홍익대·숙명여대 등이다. 이 대학들은 원칙적으로 1년 동안 무조건 재학 상태를 유지하고, 필수 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1학기는 휴학이 불가하지만 2학기부터 가능한 대학도 있다. 이때 반수생은 1학기에 최소 이수 학점만 수강하거나 학사 경고를 감수하고 대입을 준비한다. 고려대·연세대·중앙대 등은 최소 이수 학점이 적어 반수생 입장에선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최소 이수 학점이 1학점인 고려대는 ‘1학년 세미나’라는 1학점 과목만 수강 가능해 학생들이 이를 ‘1세반수’라 칭한다. 최소 이수 학점이 0.5학점인 중앙대에선 ‘CAU 세미나’라는 0.5학점 과목으로 시험 없이 교수와 1회 상담, 과제 제출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예전처럼 1학기를 학사 경고를 받고 반수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이수 학점인 1~2학점만 신청하고 반수를 시작한다”고 했다.


서울대=반수 맛집, ‘메디컬 진학용 쉼터’


반면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은 1학년 1학기부터 휴학할 수 있다. 신입생들이 학교에 등록만 하고 1년간 수능 준비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서울대가 ‘반수 맛집’이라며 ‘메디컬 진학용 쉼터’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1학기부터 재수종합학원에 등록해 학점 부담 없이 의대 입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 서울대의 신입생 중도 탈락률은 매해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서울대 중도탈락 신입생은 120명(3.6%)이었지만 2021년 148명(4.6%), 2022년 194명(5.6%)으로 늘었다. 지난해 서울대에 입학한 김모(21)씨는 “반수를 해서 서울대에 왔는데, 정작 서울대 친구들이 반수를 해서 의대나 더 좋은 다른 학과로 옮기려는 것을 보고 허탈해졌다”고 했다.


의대 증원 앞두고 신입생 반수 더 늘어날 것


7일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특히 올해는 의대 정원이 2000명이나 늘어나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 학생일수록 의대 진입을 위한 반수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합격 가능성이 있는 주요 이공계 상위권 학생들에게 큰 자극제가 될 것”이라며 “2028학년도부터 새로운 대입 제도가 적용돼 남은 3년 동안 기회를 잡으려는 신입생과 2학년, 3학년 학생들에게까지 전방위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지방권 의대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공대에 동시에 합격한 학생이 반수를 위해 서울에 남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임 대표는 “이번 정시 합격자 중 원치 않는 지방 의·약대에 붙은 학생이 서·연·고 공대에 동시 합격했을 때 어디를 택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반수를 생각한다면 지방은 반수 환경이 좋지 않아 서·연·고 공대를 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연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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