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임금체불이 아니라, 절도라고 부르죠"

이영광 2024. 2. 1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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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온에어' 298] MBC < PD수첩 > 이세진 PD

[이영광 기자]

 MBC 의 한 장면
ⓒ MBC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임금체불을 당한 근로자는 27만 5천여 명. 체불액은 1조 7,845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임금체불은 2020년에서 2023년 사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사실 임금체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왜 계속되는 걸까?

지난 6일 MBC <PD수첩>에서는 '사라진 월급 1조 7,845억 원' 편이 방송되었다. 임금체불 문제로 지난해 10월 분신 시도를 한 지 열흘 만에 사망한 택시 기사 고 방영환 씨 이야기로 시작한 이날 방송에서는 W대학 교수들과 대유위니아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를 다뤘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7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해당 회차 연출한 이세진 PD를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 임금체불 문제는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요?

"올해 1월, 2023년 임금체불액이 1조 7천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임금체불액 통계를 낸 이래로 사상 최고액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였죠. 임금체불액이 사상 최고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일하고도 돈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을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설을 맞이해서 이런 노동계의 상황에 대해서 방송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PD님은 임금체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임금이 체불되었을 때는, 사장님께 가서 밀린 급여 달라고 했어요. 당시 사장님께서는 돈이 없다고 하셨고, 저와 제 친구는 노동청에 이 일을 신고했습니다. 노동청에서도 해결이 잘되지 않아, 검찰로 넘어간다고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뒤로 관련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그리고 돈도 받지 못했고요.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다는 게, 무척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일 했으면 마땅히 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임금체불액이 사상 최고치라는 뉴스들을 볼 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예전에 생각한 거와 취재해 보니 생각의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임금체불에 대한 정의를 명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임금체불은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이 들어오지 않으면, 모든 게 다 임금체불이거든요. 예컨대 1일 늦게 들어온다? 그거 임금체불입니다. 1만 원 적게 들어왔다? 그것도 임금체불입니다. 임금체불은 단 1원이나 단 하루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그게 임금체불인데요. 이러한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현재 우리나라는 임금의 종류가 다양합니다. 인터뷰 한 전문가 중 한 명에 의하면, 임금체불 중 상당수가 수당의 종류가 많아서 이를 챙기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주휴수당이나 근속 수당, 성과급 등. 기본급과 각종 수당이 얽혀 있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정확히 계산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임금을 단순히 '월급'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택시 노동자들의 사례가 그랬습니다."

- 임금체불 문제는 여러 번 나왔잖아요. 왜 이렇게 계속될까요?

"저희가 만난 전문가들의 말은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임금을 최우선적으로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최우선적으로 줘야 할 다른 돈들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요. 거래 대금, 임대료 등을 주고 남은 돈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임금을 주는 게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임금체불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택시 기사 월급이 100만원,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쳐

- 가장 먼저 택시 운전기사였던 방영환씨 이야기가 나와요. 방씨는 월급을 100만 원 정도 받았다고 나오던데 다른 택시 회사와 비교했을 때는 어떤가요?

"고 방영환씨는 약 100만 원 전후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고 방영환씨는 조금 특별한 사례이긴 했습니다. 그 안에는 이전의 근로계약서를 기준으로 한 임금체계가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는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유족의 주장이 있습니다. 즉, 고 방영환씨의 급여와 다른 택시 회사나 다른 택시 기사님들의 급여를 동등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저희가 만난 대부분의 택시 기사님들은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17시간씩 일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어떤 분은 야간에만 일을 한다고 해요. 야간에 일을 해야 할증 등을 통해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요."

- 100만 원이라는 게 기본급만이고 성과급은 뺀 건가요?

"고 방영환씨의 유족 측에 받은 임금 명세서에 따르면, 고 방영환 씨가 100만 원 전후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약 50여만 원의 기본급과 근속 수당, 승무 수당, 야간수당, 상여금 등을 포함한 전체 금액에 4대 보험 등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이 100여만 원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 적은 거 아니에요?

"2023년 기준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기준 약 120만 원입니다. 고 방영환씨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한 돈을 받은 셈인데요. 고 방영환씨의 딸 방희원씨에 따르면, 월세 30여만 원, 몇 가지의 보험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했을 것으로 추정하더라고요. 방희원씨가 저희에게 준 카드 명세서가 있었는데요. 그 카드 명세서를 보면, 편의점 사용 내역으로 1,000원~ 3,000원 등의 소액이 많았습니다. 식사를 편의점에서 사 먹은 것으로 보였고요. 고 방영환씨는 신용카드 사용하지 않고, 티머니를 2만 원씩 충전해서 교통카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하더라고요."

- 회사 설명에 따르면, 100만 원을 지급한 이유가 2019년 근로계약서에서 기본근로 시간인 3시간 30분으로 최저임금을 계산했다고 설명해요. 왜 3시간 30분으로 근로시간을 계산한 건가요?

"택시 업계의 임금체계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한데요. 2009년, 택시업계에 고정급인 '기본급'만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최저임금법 특례조항이 시행됩니다. 이는 기본급의 비중을 높여 택시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는데요. 이후, 택시업계에서는 노사 간 합의로 1일 소정 근무시간을 줄임으로써,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임금 줄이는 효과를 냅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3시간 30분 일 한다고 하면, 그만큼 하루에 받을 수 있는 기본급이 줄어드는 거죠.

2019년 H운수는 1일 소정근로시간 3시간 30분의 근로계약서를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했습니다. 당시 고 방영환씨는 이 근로계약서에 근거해 3시간 30분의 소정 근로 했다고 판단되어, 그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 방영환씨가 노동청에 임금체불로 2023년 2월에 진정하지만, 노동청은 3개월 후 혐의없음이란 결론을 내요. 그리고 9월 2차로 고소해요. 그러자 11월 기소 의견이 나오죠. 1차 진정 때 기소 의견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고 방영환씨는 2023년 2월에 H운수의 임금체불과 관련하여 노동청에 진정해요. 그해 5월, 무혐의가 나옵니다. 같은 건으로 9월에 노동청에 고소합니다. 그리고 11월에 말씀하신 것처럼 기소 의견이 나오는데요. 첫 번째 한 진정과 두 번째 한 고소는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취업규칙의 새로운 발견입니다. 노동청에서는 1차 때 확인하지 못한 취업규칙이 추가로 발견되어 H운수의 위법성을 확인할 만한 근거가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각 사업체는 취업규칙을 신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노동청은 그것을 확인할 의무가 있고요. 바뀐 취업규칙이 좀 더 빨리 확인되었다면, 판단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급여명세서가 마이너스, 이유는 비리 고발?

- 방송에 나오는 W대학의 교수 임금 명세서에 기본급이 마이너스였는데, 학교에 돈을 내란 건가요?

"마이너스 급여명세서를 보고, 사실 저도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회사에 돈을 다시 줘야 하는 것인지. 마이너스 급여명세서를 받은 교수님에 의하면, 그냥 마이너스로 끝이 났을 뿐, 추가로 학교에 돈을 주지는 않았다고 해요.

마이너스 급여명세서가 이해가 안 가서, 교수님들에게 물어봤어요. 2022년 마이너스 급여명세서를 받았을 때,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느냐고. 그랬더니 수업했다는 거예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학교 측에 물어봤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임시 이사가 왔을 때, 급여를 많이 받아 갔기 때문에, 많이 받아 간 만큼 깎아서 명세서를 발행했다고 하더라고요. 즉, 상계했다는 건데요. 저희가 만난 노무사와 변호사들은,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임금 상계는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 그럼 일부 교수만 그런 급여명세서를 받은 것인가요, 아니면 해당 대학의 전체적인 분위기인가요?

"마이너스 급여 명세서를 받은 것은 일부 교수들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수들은 학교의 설립자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 관계가 안 좋은 게 설립자 송씨 부부의 비리를 고발했기 때문인가요?

"고발했기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고요. 설립자 송씨의 비리를 언론에 알리고, 교육부의 임시 이사 파견을 주장한 것이 하나의 사유가 되었긴 했습니다. 교원 징계 의결요구서에 따르면, 교수들의 징계에 대한 사유가 나오는데요. 품위유지의무 위반에는 학교 및 설립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고, 집단행위 금지 위반에는 천막농성 등을 했다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종의무 위반이 있는데요. 교수들에게 복종의 의무가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징계사유로 나와 있는 복종의무 위반을 보면,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할 때 교수협의회 명의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격하게 환영한 것'을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 설립자도 만나셨는데, 어땠나요?

"교수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 이유는 교수들이 학교 통장을 압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들은 통장을 압류했지만, 통장에 있는 돈을 뺄 수는 없었습니다. 압류한 돈은 공탁이 걸려 있었는데, 그 공탁금을 가져가는 소송에서는 학교가 승소했습니다. 공탁금은 학교가 교육용으로 사용할 돈이기 때문에, 그 돈을 교수들이 가져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교수들이 통장을 압류하기 전에도 임금체불이 있었습니다. 압류 때문에 임금을 못 주는 상황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임금체불, 우리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해야

- 미국에서는 임금체불이라고 안 하고 임금 절도라고 하나 봐요?

"임금체불은, 임금 지급을 미루는 그 현 상황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임금 절도는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절도와 같은 강력범죄임을 나타내죠. 미국에서는 임금체불을 임금 절도라고 표현합니다.

취재진이 만난 전문가들 역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임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한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 삶의 일부를 투영해서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돈으로 받아 한 가정의 생계가 꾸려집니다. 결국 임금은 노동자 삶의 일부이자 한 가정의 생계입니다. 그걸 가져가는 것은 절도와 같은 중범죄라고 할 수 있죠."

- 미국에서 임금 절도 했을 때 처벌 같은 게 있나요?

"미국에서는 형사처벌보다는 민사로 해결하는 데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통해서 체불한 임금의 3배 4배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자가 적다고 해요. 우리나라와는 무척 다르죠."

- 그렇다면 임금체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만난 전문가들은 인식의 변화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사실, 인식의 변화라고 하면 추상적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노동자의 임금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인식, 노동자의 임금이 후순위로 밀리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인식 등이 있어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임금을 주지 않다가 벌금 몇백만 원 내고 끝내는 사업주들이 많은데요. 그러한 사업주들이 임금체불을 임금 절도로 인식하고, 선순위 해결안으로 둘 수 있도록 시급성을 느낄 만한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임금체불의 피해양상이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저희가 취재한 사례들을 보고, 사람들이 '이게 임금체불이야?'라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임금체불과는 다르다는 것이었죠. 임금체불이라고 하면, 임금을 주기로 한 날에 정액을 주지 않는 걸 말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임금체불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면 임금체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더라고요. 어쩌면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사상 최고액의 임금체불을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취재할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임금체불 피해자들이 많이 있는데, 방송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방송에 나오면 돈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가 있었고요, 방송에서 언급되면 잊고 지냈던 안 좋은 기억들을 꺼내야 한다는 불편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희의 입장에서는 방송에 나와서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피해자들이 오히려 숨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 분들을 설득해서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각 업계의 임금체불 현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까, 다양한 업계의 임금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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