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시즌 21연패' 페퍼저축은행의 우울한 설날

양형석 2024. 2. 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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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10일 기업은행전 세트스코어 0-3 완패, 역대 최다연패 불명예

[양형석 기자]

페퍼저축은행이 V리그 역대 최약체 팀의 불명예를 떠안고 말았다.

조 트린지 감독이 이끄는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는 10일 화성 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14-25,12-25,19-25)으로 완패했다. 이로써 페퍼저축은행은 작년 11월10일 GS칼텍스 KIXX와의 2라운드 첫 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둔 이후 3개월 동안 21경기에서 단 1승도 따내지 못했다(2승26패).

페퍼저축은행은 토종에이스 박정아가 9득점, 엠제이 필립스가 8득점을 기록했지만 어깨가 좋지 않은 야스민 베다르트가 20%의 공격성공률로 6득점에 그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페퍼저축은행은 블로킹에서 3-10으로 크게 뒤지며 높이에서도 기업은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로써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012-2013 시즌의 KGC인삼공사(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를 뛰어넘는 V리그 역대 단일시즌 최다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역대 가장 약했던 2012-2013 시즌의 인삼공사
 
 최근 석 달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페퍼저축은행은 인삼공사의 연패기록을 11년 만에 경신했다.
ⓒ 한국배구연맹
 
6시즌 연속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하며 크게 고전하고 있는 지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사실 정관장은 KT&G 아리엘즈와 인삼공사 시절 프로 출범 후 8시즌 동안 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던 강호였다. 특히 KT&G는 V리그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원년 우승팀'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엔 기업은행과 페퍼저축은행이 창단하기 전이었고 외국인 선수도 없이 5개 구단이 정규리그 16경기로 시즌을 치렀다.

V리그는 2005-2006 시즌을 앞두고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이라는 '먹이사슬 포식자'가 등장해 네 시즌 동안 세 번의 우승을 휩쓸었고 KT&G는 중위권을 유지하며 후일을 도모했다. 그리고 KT&G는 김연경이 일본리그로 진출한 2009-2010 시즌 곧바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중심엔 현재까지도 V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콜롬비아 특급' 마델라이네 몬타뇨가 있었다.

KT&G는 엄청난 운동능력과 강철체력을 자랑하는 몬타뇨를 앞세워 2009-2010 시즌 케니 모레노와 양효진,한유미(KBS N 스포츠 해설위원)가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KT&G는 팀명을 인삼공사로 바꾼 2011-2012 시즌에도 최초로 정규리그 1000득점을 넘긴 몬타뇨의 활약에 힘입어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몬타뇨는 2011-2012 시즌 현대건설과의 챔프전에서 무려 경기당 평균 31.4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3번째 우승을 차지한 이후 인삼공사의 '봄날'은 끝이 났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몬타뇨가 팀을 떠났고 김세영, 한유미마저 잠정 은퇴를 선언한 것. 인삼공사는 설상가상으로 새 외국인 선수 드라간 마린코비치마저 부상을 핑계로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사실상 국내 선수들 만으로 시즌 절반을 치른 인삼공사는 2012-2013 시즌 다른 팀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면서 20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쓰고 말았다.

'디펜딩 챔피언'에서 졸지에 단일시즌 최다연패를 기록한 인삼공사의 20연패 기록은 좀처럼 깨지기 힘든 대기록(?)으로 남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실제로 6개 구단 체제에서는 30경기, 7개 구단 체제에서는 36경기를 치르는 V리그에서 시즌 절반 이상을 연속으로 패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공교롭게도 창단 후 가장 투자를 많이 했던 세 번째 시즌에 인삼공사의 기록을 11년 만에 갈아치웠다.

과감한 투자에도 단일 시즌 21연패 수렁
 
 이번 시즌 평균 22.77득점을 기록 중인 야스민은 5라운드에서 평균득점이 15점으로 뚝 떨어졌다.
ⓒ 한국배구연맹
 
사실 페퍼저축은행이 창단 후 한동안 고전할 거라는 것은 배구팬이라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페퍼저축은행은 뛰어난 인재가 쏟아져 나오며 '7구단 창단의 최적기'로 불렸던 2018년과 2019년이 아닌 인재풀이 다소 애매했던 2021년에 창단했다. 뿐만 아니라 페퍼저축은행은 신생구단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에서도 당장 전력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베테랑 선수보다는 나이가 어린 유망주 위주로 선수들을 지명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확실한 1약'으로 꼽히는 와중에도 20연패 기록에 다가가진 않았다. 2021-2022 시즌과 2022-2023 시즌 한 차례씩 17연패의 늪에 빠졌지만 투혼을 발휘하며 18번째 경기에서 힘들게 승리를 챙겼다. 배구팬들은 이를 보며 역시 인삼공사의 20연패는 쉽게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고 페퍼저축은행도 전력을 보강하면 충분히 성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페퍼저축은행은 2022-2023 시즌이 끝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우승청부사' 박정아를 비롯해 4명의 FA(내부 FA 2명 포함)와 계약하는데 무려 40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한 것이다. 이번 시즌 여자부의 연봉상한액이 옵션과 승리수당을 포함해 28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팀의 명운을 건 대대적인 투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페퍼저축은행이 받고 있는 성적표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페퍼저축은행은 작년 11월 15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경기부터 10일 기업은행과의 경기까지 21경기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모두 패했다. 단 세 번의 풀세트 경기를 통해 승점 3점을 따낸 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박정아와 야스민이 가세하면서 상위권을 위협할 수 있는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현실은 구단들의 '승점 자판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멤버였던 박사랑과 박은서, 서채원 등은 아직 주전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195cm의 최장신 센터 염어르헝은 작년 12월 또 다시 무릎수술을 받았다. 보상선수 보호 또는 트레이드만 잘 했다면 페퍼저축은행 선수였을 신인왕 0순위 김세빈은 현재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에게 더욱 불행한 사실은 시즌 후반 중·상위권 구단들이 승점 1점이 아쉬울 정도로 순위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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