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마지노선 깨지자…'1억1천만원' 출생아에 드립니다
저출생 위기 직면한 지자체, 현금성 지원 중심 공약 발표
총선 앞둔 여야 불붙은 공약 경쟁…허경영 발언 재조명
'국가 소멸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저출생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가임 여성(15~49세) 1명이 평생동안 자녀를 채 한 명도 낳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미다. 이에 지역 존폐를 넘어 국가 존폐의 기로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들도 '출산 장려금 지급' 등의 타개책을 내놓고 있는데, 최근 한 광역시는 출생한 모든 아이들에게 1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1월 인구동향'을 보면,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줄곧 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 1명이 평생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2018년(0.98명) ▲2019년(0.92명) ▲2020년(0.84명) ▲2021년(0.81명) ▲2022년(0.78명)으로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17개 시도별 출생아 수는 충북, 충남, 전남 등 3개 시도에서는 증가하고 서울, 부산, 인천 등 14개 시도에서는 줄어들었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도 덩달아 가팔라지고 있다. 2024년 기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7년 출생아 수는 35만7771명으로, 2016년 40만6243명에 비해 4만8000명 이상 급감했다. 2년 후인 2026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9년 출생아 수는 5만명이 줄어든 30만2676명에 불과하다.
전교생이 채 60명이 안 되는 전국 초등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전국 초등학교 5곳 중 1곳은 전교생이 60명 이하이며(6175개교 중 1424개교), 20년 전인 2003년(5463개교 중 610개교)과 비교했을 때 23.1% 증가했다. 전국 초·중·고 10곳 중 2곳은 입학생이 '0명'이었다(2138개교).
저출생 위기 직면한 지자체들, 현금성 지원 중심 대책 마련 급급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출생 위기 최전선에 서 있는 지자체들은 출생과 관련한 현금성 지원 중심의 대책을 마련해 내놓고 있다. 출산지원금 수혜 대상은 해당 지역에서 주민 등록상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세대 구성원으로 구성된 가구가 대상이며, 각 시·도·군에서 설정한 소득 기준 및 추가 조건에 따라 수혜자와 급여 금액이 결정된다. 신청을 원하는 가구는 해당 시·도 또는 구·군에서 요구하는 신청서 및 필요 서류를 제출하여 신청하면 된다. 수혜와 관련해서는 지자체별마다 차이가 있다. 출산을 원하는 부모에게는 '아이테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지자체도 존재한다.
올해부터 인천시는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정책을 시행한다. 인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만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원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대전시는 청년세대의 혼인을 유도해 신혼부부의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전국 특·광역시 최초로 청년 부부에게 최고 500만원을 지원하는 결혼장려금을 올해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충북 영동군의 경우 '1억원 성장 프로젝트'를 시행해 결혼 후 관내에 정착하는 45세 이하 청년 부부에게 1천만원의 정착지원금을 지원하고, 국비·도비로 지원되는 각종 장려금에 군비 사업을 합해서 영동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부에게 최대 1억24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경남 거창군의 경우 출생아 1인당 1억1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년 넘게 유지한 6만명대 인구가 올해 무너진 것을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다. 경남 진주시는 전국 최초로 '난임부부 격려금' 제도를 도입해 난임 시술 후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매회 20만원씩 격려금을 지급하고 있고, 전북 임실군은 모든 출산 가정에 최대 2년간 기저귀를 지급한다. 고창군의 경우 출생아 1인당 50만원의 산후조리원 비용을 지급한다.
아이를 낳으면 아파트를 임대해주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전남 화순군은 청년·신혼부부에게 월세 1만원으로 20평형대 아파트를 임대하는 '만원 임대주택' 사업을 지난해부터 시행했고, 해당 정책은 10.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료됐다. 강원도는 올해부터 육아 기본수당 지원 대상을 4세에서 5세로 확대해 1~3세 아동은 월 50만원을 지급하고 4~5세 아동은 월 3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2024년 기준 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출산지원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는 약 89%(광역 11곳·기초 202곳)에 육박한다. 지자체의 출산 지원정책 예산 중 출산지원금 사업의 예산 규모는 5735억원(광역 3614억원·기초 2121억원)에 달한다. 다만 지역에 따라 출산지원금은 최대 2400만원까지 편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국회예산처가 발간한 '인구 위기 대응 전략' 보고서를 보면 "한 지역의 출산지원금 상향은 주변 지역 가임기 여성 인구 유입을 유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인구 유입 효과는 인프라가 주변보다 잘 갖춰진 도시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지역 간 인구·출산율 격차를 더 크게 할 위험도 존재한다"고 짚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2009~2021년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출산 지원 정책을 분석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출산 지원정책의 효과 분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출산장려금 100만원을 지급했을 때는 합계출산율이 0.03명 증가했지만, 아동 1인당 인프라 예산액 100만원이 늘어날 때 합계출산율이 0.098명 증가했다는 유의미한 결과도 나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지역별 편차가 큰 출산지원금 제도를 중앙정부에서 국고를 투입해 일관적으로 지원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총선 앞둔 여야 '저출생' 공약 경쟁…과거 허경영 발언 재조명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도 저출생 극복을 위한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일명 '아빠휴가') 1개월 의무화를 공약화했다. 현행 배우자 출산휴가(10일)의 3배가량을 늘린 것이다. 추가로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현행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올리고,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유급 자녀돌봄휴가(연간 5일)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를 가진 모든 국민에게 출산 전후 휴가 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추가로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게 하고,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차등 감면하겠다고도 밝혔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저출생 극복 공약을 내놓으면서 황당무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과거 대선 공약이 현실화 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공약으로 결혼 시 1억원, 출산 시 1인당 5000만원을 지급하고, 자녀가 10살이 될 때까지 월 100만원의 육아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만 해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얻은 공약이 사실상 현실이 되어가고 있어 단순한 현금성 정책이 아닌 촘촘한 설계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기정 인턴 rhrlwjd031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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