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이민자 공짜 급식과 '앵그리 트럼프'

뉴욕=권해영 2024. 2. 11.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에게 무료 급식도 모자라 이젠 식비 지출에 쓸 선불카드까지 준다네요. 내가 낸 세금으로요. 뉴욕이 왜 이렇게 됐죠?"

최근 만난 한 뉴요커는 이주 신청자 급식 지원 이야기를 꺼내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뉴욕시가 도입한 이민자 식비 지원 프로그램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와 현지 언론 소식을 종합하면 상황은 이렇다. 시는 현재 이민자들에게 숙소 외에 한 끼에 11달러짜리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중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이주자들은 급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그동안 계속 현금 지원을 요구해 왔다. 이에 시는 무료 급식 대신 마트나 편의점에서 직접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도록 선불카드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선 5300만달러를 투입해 이민자 가족 5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앞으로 1만5000명 수준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뉴욕에서 15년가량 거주한 이 뉴요커는 "밥맛 타령하는 이민자들에게 현금을 쥐여주는 데 내가 낸 세금을 쓰고 싶지 않다"며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을 뽑은 걸 후회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우선 무료 급식보다 현금 지원이 비용이 덜 든다. 시는 4인 가족에게 매달 약 1000달러의 선불카드를 지원하는데 4명의 하루 식비는 총 33달러가 된다. 하루에 무료 급식 한 끼만 제공해도 4명이면 44달러니 선불카드로 지원하면 예산을 아낄 수 있다. 시는 이번 프로그램 시범 운영으로 매달 60만달러, 연간 720만달러 이상 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버려지는 음식도 줄일 수 있다.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시는 닥고라는 업체를 통해 불법 이민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데 지난해 10월22일부터 11월10일까지 버려진 급식만 7만끼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끼에 비용이 11달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뉴욕 시민들은 20일간 총 77만6000달러, 하루 3만9000달러를 버려지는 급식 비용으로 부담한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뉴욕 시민들의 생각은 시 당국과는 다르다.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무료 급식 지원도 탐탁지 않은데 이민자들 손에 현금까지 쥐여준다니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뉴욕시는 또 1981년 법원 판결에 따라 이민자들에게 무료로 쉼터까지 제공한다. 그 결과 뉴욕시에는 지난 2022년 봄부터 2023년 말까지 약 2년 간 시 인구(810만명)의 2%에 달하는 15만6600명의 이민자가 몰려 왔다. '이민자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 하다. 얼마 전 뉴욕에서 만난 한 한인 택시 기사와도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미국 영주권자로 뉴욕 퀸즈에 사는 그는 "나도 이민을 왔지만, 합법적 신분으로 세금을 내면서 살고 있다"며 "뉴욕으로 몰려드는 불법 이민자들을 내 세금으로 지원하고 싶지 않다. 이민 문제에 강경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재집권 시 불법 이민자 수백만 명 즉각 추방' 공약 등 다소 과격해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이민 문제로 불만이 많은 미국인들에겐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민 문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 CBS 방송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정부가 불법 이민자에게 더 강경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다급해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경 봉쇄 권한 강화를 의회에 요청했다. 기존의 유화적인 이민 정책 기조에서 태세를 전환했으나 지금은 공화당이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려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민자 급식 문제로 분통을 터뜨린 뉴요커는 "이곳엔 '샤이 트럼프(Shy Trump)'가 많다"고 했다. 자신도 샤이 트럼프로 소개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며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힌 그는 샤이 트럼프 보다는 '앵그리 트럼프(Angry Trump)'에 가까웠다. 미 대선과 맞물려 불법 이민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1월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